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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계몽으로 이어진 국학의 흐름 일깨우는 학술회의 2016.04.10  조회: 1000

사단법인 국학원(권은미 국학원장)은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연구원(원장 조남호),

(재) 한민족기념관(관장 장영주)와 함께

‘국학과 한글운동'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공동 주최하였습니다.

2015년6월 13일(토) 오후 1시 세종문화회관 예술동 예인홀에서 진행된 자료입니다.




발표내용 요약(서론)



1. 주시경과 그의 제자들의 단군에 대한 이해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조남호교수)


이 글은 주시경과 그의 제자들의 단군에 대한 이해를 다루고자 한다. 주시경(1876-1914), 이윤재(1888-1943), 김두봉(1889-1961), 신명균(1889-1940), 권덕규(1890-1950), 이병기(1891-1968), 최현배(1894-1970), 이극로(1893-1978), 김윤경(1894-1970), 정열모(1895-1967)가 그들이다. 이들은 대종교를 믿었었거나 교리를 이해한 사람들이다.  


우리의 근대 국학은 근대 철학과 과학에 의해서 성립된 것이 아니라, 종교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동학이 특정한 신을 내세우지 않는데 비해, 대종교는 단군을 내세워 민족의 구심점을 세우고자 하였다. 동학은 누구나 하나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계급에서의 평등성을 주장할 수 있었다. 이는 근대 국민국가의 구성간의 평등성을 구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대종교는 이러한 신이 우리민족의 시조인 단군임을 통해 민족 국가의 정체성을 제시한 것이다.1)


대종교는 국외에서는 무장투쟁으로, 국내에서는 한글운동을 전개하였다. 주시경을 비롯한 그의 제자들은 민족의 정체성으로서 한글을 주장하고, 민족의 구심점으로 단군을 모셨다. 이들은 한글 운동을 전개했을 뿐만 아니라, 신문, 잡지, 강연등을 통해 단군을 소개하였던 것이다. 이들은 비록 역사학자는 아니었지만, 조선의 민중들에게 단군이 민족의 시작임을 밝히고자 노력하였다.


한글운동과 독립운동에 대해서 조선어학회와 관련해서 국어학과 역사학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박용규는 조선어학회 33인을 다른 ??????조선어학회33인??????이 있고, 정순기의 ??????조선어학회와 그 활동??????등과 그밖의 수많은 논문이 있어 충실히 연구되고 있다. 한글과 대종교에 대해서는 김동환의 ?일제하 항일운동 배경으로서의 단군의 위상?, ?단군을 배경으로 한 독립운동가-경상도 안동지역을 중심으로?, ?한국종교속에서 단군민족주의?가 있지만, 일부만 소개되어 있고, 한글운동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다. 개별 한글학자들의 연구로는 신용하의 ?주시경선생의 애국계몽사상과 한글?, 이현희의 ?권덕규의 생애와 그의 국어학적 업적에 대한 연구?, 최기영의 ?애류 권덕규의 생애와 저술?, 고영근의 ?국어학사의 재조명-이윤재?, 최기영의 ?백수 정열모의 생애와 어문민족주의?, 고영근의 ?이극로의 사회사상과 어문운동?등이 있다. 이러한 개별적인 연구는 한글학자의 생애를 전반적으로 조망하고 있지만, 이들의 단군에 대한 숭모와 대종교의 종교적 체험에 대해서는 간략하게 소개하고만 있다. 이들의 단군이해를 본격적으로 제기할 필요가 있다. 이 글은 주시경과 그 제자그룹들의 단군 이해를 종교적, 문화적, 언어적, 역사적 측면에서 고찰할 것이다.




2. 해방 이후 조선어학회의 정치 지형


                박용규(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올해는 광복 70주년, 분단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분단 때문에 독립유공 포상이 이루어지지 못한 채 북한에서 생애를 마친 3명(이극로, 이만규, 정열모)을 제외하더라도, 2014년 현재까지 조선어학회 선열 33인 가운데 24명이 독립유공자로 포상되었다. 이를 보더라도 조선어학회 인사들의 항일 투쟁은 혁혁하였다.


조선어학회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조선어 철자법 통일안)??????(1933),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1936), ??????외래어표기법 통일안??????(1941)을 완성하여, 일제의 지배에서 벗어나면 곧바로 국어 규범으로 쓸 수 있게 하였다. 더불어 1942년에 16만에 달하는 우리말 어휘의 뜻풀이가 담긴 ??????조선어대사전??????을 기어코 출판하여 민족어를 영구히 유지하고자 하였다. 이런 활동은 언어독립운동 즉 항일 투쟁이었다.


이를 간파한 일제는 1942년 10월 1일 ‘조선어학회 사건’을 일으켜, 조선어학회의 회원 33명을 검거하여 탄압하였다. 일제 형사로부터 이윤재와 한징은 물고문과 날마다 난타를 당하여 옥사하였다. 일제 경찰이 장현식의 혀에 대못을 박는 만행을 자행하여, 장현식은 평생 말을 더듬어야 했다. 일제 경찰은 함흥경찰서와 홍원경찰서에서 26세 청년 권승욱을 상대로 하여 허파에 물이 들어가게 하는 물 먹이기(일명 해전)와 비행기 태우기(일명 공중전) 등의 고문을 자행하였다.


이극로, 최현배, 이희승, 정인승은 함흥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1945년 8월 15일 일제 패망의 결과 8월 17일에 석방되었다.


감옥살이에서 풀려난 조선어학회의 항일투사들은 해방 이후 새나라 건설 작업에 참여하였다. 국어 교육의 확립과 통일 민족국가 건설 운동에 뛰어들었다. 본고는 먼저 조선어학회 인사들이 무슨 정치 활동을 하였는지를 고찰하고자 한다. 이어서 이들이 어떠한 입장을 가지고 정치 현실에 참여하였는지를 검토하고자 한다. 이러한 검토를 통해 우리는 이들의 정치 지형을 파악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3. ‘과학적’국어학의유산


              김영환(한글철학연구소, 부경대)


경성제대의 유산이 오늘날 우리 국어학계에 끼치는 영향력은 대단하다. 경성제대는 해방 후 서울대학교로  새 출발을 했지만 그 부정적 유산은 청산되지 못했다. 흔히 논의되는 바 해방 후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은 학계도 예외가 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해방 후의 국립 서울 대학교는 결코 일인의 경성 제국대학의 후신이 아니건마는 왜정 시대 경성 제국대학에서 오구라, 다카하시, 고노, 무리에게 배운 몇몇 사람들이 서대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은연히 한 문벌을 이루어 그 출신으로 하여금 국어 국문학회를 조직하게 하여 사회적 활동의 기반을 삼고....“2)




그러나 정치나 경제 분야와 달리 국어학의 경우, 여러 겉모습에 가려 식민지 유산의 청산은 더 시간이 걸리고 어려운 일에 속하였다. 비판적 담론을 그 원동력으로 삼아야 할 학계에서 식민지 시절의 패권이 그대로 유지됨으로써 비판이 봉쇄된 채 학문 권력이 오랫동안 군림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그러나 부분적으로는 이런 논의가 90년대 중반부터 나오기 시작하였으나 아직도 미미한 흐름에 지나지 않는다. 논의의 전개를 위하여 경성제대와 서울대의 연결 고리인 경성제대 출신으로 서울대 국문과 교수였던 이희승과 이숭녕에 논의를 집중하려 한다. 이희승 학문을 ‘과학적’ 국어학이라 하는 경우는 다음과 같은 경우에 발견된다.




“우리말을 연구하고자 했던 이희승에게 경성제대 조선어문학과는 도약의 기반이었습니다. 경성제대 조선어문학과의 학문적 분위기 속에서 이희승은 우리말 연구의 새 길을 보았던 것입니다. 경성제대의 설립은 일제의 조선 지배 정책의 일환이었지만, 경성제대는 근대 학문의 수용과 체계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했고 이는 조선어학 연구에서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특히 조선어학 분야를 책임진 오구라 신페이小倉進平, 1882~1944는 역사적 관점에 바탕을 둔 실증적 연구 방법론을 강조하며 조선어의 역사를 체계화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이희승은 그로부터 언어학 연구의 방법론을 배웠고, 이를 계기로 과학적 언어 연구란 어떠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됩니다.”3)




이숭녕의 학문 경향을 과학적이라 규정한 경우도 눈에 뜨인다.


“국어라 하면 해방 후 소중히 여기는 나머지 비과학적인 쇼비니즘(광신적 애국주의)적 태도가 엿보여 정당한 이론을 펼 수 없는 면도 있을 터이다. 더구나 민족하면 때로는 흥분을 느끼고 신경과민히 서두르는 학문하는 태도를 보며 우리는 과학적 정신을 끝까지 견지하여야 하며 학문에 있어서는 극도로 냉정하여야 함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4)


“선생은 한평생 과학적 기반 위에 새로운 국어학을 건설하려는 일념으로 사셨으며, 전국의 방언을 두루 상고하심도, 전국의 방언을 샅샅이 채집하심도 일반 언어학의 이론을 널리 살피심도 다 이를 위함이었도다. ”5)


부분적 차이로 ‘과학적’ 국어학의 추구에서 이숭녕은 이희승보다 단순하고 일관성이 있었다. 이희승의 경우에 식민지 학문 경향은 여러 외적 요인으로 오랫동안 은폐되어 있었다. 


  정치나 경제에서 친일 청산이 공론화되면서도 학문 분야에서 이에 맞먹는 친일 청산은 제대로 공론화되지 못한 이유는 그들이 계속 학계의 주류를 이루어 힘이 만만치 않고 또 과학이라는 탈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조선어 학회 사건의 주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이희승이 그 식민지 유산을 그대로 보존하는 데 방패막이가 되었다. 따라서 우리가 식민지 제국대학의 유산을 청산하려면 국어학에서 추구하는 ‘과학적’인 것의 성격을 밝혀 그 이데올로기적 성격과 미망을 파헤쳐야 한다.


그러나 그들의 활동이 처음부터 ‘과학적’ 국어학의 공통된 교리에서 출발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과학적’이란 주장을 주시경과 조선어 학회의 민족주의적 전통과 대결하면서 내세웠던 것이다. 따라서 구체적인 문제에서 그들이 내세운 ‘과학적’인 국어학의 내용을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우리 국어사 또는 국어학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문제, 현재와 비래의 말글 정책 특히 한글 전용 정책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문제와 연결된다. 이런 문제에서 그들은 조선어 학회의 전통과 거의 모든 면에서 대립하면서 ‘과학적’ 국어학을 내세웠다.
 


4. 한글과 현대 단학, 그리고 뇌교육-우리말 속에 깃든 정신-


                                이승호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삼국시대 이후에 들어온 외래문화의 역사는 비교적 잘 정리되어 있지만, 이에 비해 한국 고유의 문화이며 사상인 국학(國學)6)과 관련된 자료는 소실된 것이 많다. 그렇기에 지금에 와서 국학의 뿌리를 찾기란 쉽지 않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미국의 세계사 교과서에는 “한국문화는 중국문화의 아류이기에 고유한 전통문화가 없으며, 만약 있다면 샤머니즘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다.7)


한국은 지난 2,000년 동안 주변의 강대국의 침략과 지배 속에서 끊임없는 문화 침투를 당해왔고, 그러한 시련의 역사 속에서 민족의 본래 정신과 가치를 잃어버렸다. 특히 36년간 이어진 일본의 식민지배에서 한국은 고유한 문화를 잃게 되었고, 문화적으로 식민지화 되었다. 일본이 펼쳐왔던 우민화 식민정책은 민족의 정신과 뿌리를 부정하게 만들었고, 국조 단군을 곰의 자손으로, 단군조선의 역사를 신화로 만들어 버렸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한국인의 심상 속에서 전통문화와 외래문화는 혼재되어 왔다. 더욱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면서 바로 서구 기독교문화의 영향권으로 들어섰고 근대화라는 미명 아래 한국 전통문화는 괄시되어 왔기에 한국의 전통문화는 아직도 복원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많은 영토적 외침과 문화적 외침을 받아 온 우리 민족은 외래문화가 들어온 삼국시대 이전의 고유한 전통문화를 보여주는 문헌을 보존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그런 병화에도 소실될 수 없는 것이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우리말’이다. 왜냐하면 민족이 사라지지 않은 한, 그 민족이 사용하는 언어는 민족의 역사와 함께 흥망성쇠를 겪으며 지속되기 때문이다. 


독일 철학자 훔볼트(Humbolt, 1767~1835)는 모든 언어는 하나의 고유한 세계관을 드러내고 있다고 하면서 각각의 언어란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이기 때문에 존재하는 언어의 수만큼 서로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고 말했다.8) 모든 언어는 일정한 문화적 전통 안에서 생겨나고 또 그 문화는 역으로 언어에 제시된 세계관의 지배를 받는다. 그러므로 모든 언어 속에는 일정한 문화적 전통과 더불어 이룩된 특정한 형식과 카테고리들이 담겨 있게 된다.9)


근대 국어연구의 선구자격인 주시경(周時經, 1876~1914)을 비롯한 최현배(崔鉉培, 1894~1970), 권덕규(權悳奎, 1890~1950) 등은 훔볼트의 언어철학 관점을 수용하여, 언어를 독립자존의 필수요소로 간주하였으며 언어를 민족의 정신활동 및 민족문화 창조와 관련시켜 해석하였다.10) 이들은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민족어를 수호하는 국학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우리말과 글이 보존되고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우리말’은 우리 민족의 세계관을 품고 있으며 그 의미 속에서 전통문화와 사유체계를 확인할 수 있기에, 우리말은 ‘국혼을 품고 있는 국학의 상징이며 표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국학 운동의 정신은 해방 후 반세기가 지났다. 비록 외래문화에 의해 우리 고유한 정신이 퇴색했지라도 우리말을 중심으로 한 국학 운동의 필요성은 강조되어야만 할 것이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한글은 세종대왕 때 창제되었다고는 하지만,11) 우리말은 조선시대, 고려시대, 삼국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단군조선시대부터 있었기에 우리의 문화와 정신을 대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근대 이전까지 사용한 한문은 소수 지배층에 의해 독점화 되었고 일반 대중들에게는 보편화되지 않았기에, 현재까지 남겨진 한문으로 된 문헌만으로 한국 고유한 문화를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말은 한글이나 한문으로 표현되기 이전에도 지배층에서부터 일반 민중들까지 보편적으로 사용되었기에 조상대대로 내려온 우리말 속에는 민족의 정신, 얼이 스며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12)


민족의 역사와 함께하는 말의 본질은 어떠한 경우에도 변함없고, 하나의 말은 최초의 골격을 갖추던 시점의 문화를 그대로 흡수하여 그것을 뼈대로 발전해 가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뼈대를 살펴보면 근본을 알 수 있다.13) 그렇기에 평소에 우리가 쓰고 있는 말들을 잘 살펴보면, 그 속에서 우리 민족의 고유한 문화와 사유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전승되어 온 우리말 중 지금도 많이 사용하고 있는 말에 내포된 의미나 상징을 잘 해석한다면, 국학의 사상적, 문화적 배경과 한민족의 정신세계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글에서는 우리말이 갖고 있는 의미를 현대단학과 뇌교육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뇌와 연계하여 살펴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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