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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원 제 34회 학술회의] 2017.01.12 촛불집회 이후,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야만 하는가 2017.07.01  조회: 319

 

 

 

34()국학원 정기학술회의

 

 

촛불집회 이후,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야만 하는가

- 홍익민주주의를 위하여 -

 

 

 

   

일시: 2017112(목요일) 13:00~18:00

장소: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

■  ()국학원. 국학운동시민연합

()국학신문사

 

 

    학술회의 기본 일정 및 프로그램

 

1. 일 정

개최일시: 2017112(목요일) 오후 1~ 6

장 소: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

2. 프로그램

    대 주 제 : 촛불집회 이후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야만 하는가

- 홍익민주주의를 위하여

 

[식전행사] 사회 ------------------- 박영준[국학원 대외협력국장]

 

[기조강연]    발표------------------ 오단 권기선[국학원 부원장]

 

[1] 학술회의 사회 ------------- 우대한 박사[국학운동시민연합]

 1발표자 - 촛불 다음날 : 홍익정신과 선비정신을 기초로 한 혁신의 전망

발표-------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하바드대 박사, 현 경희대교수]

 2발표자 - 홍익정신이 대한민국의 중심가치가 되어야 한다.

발표-------- 김창환[국학원 사무총장]

 

 3발표자 - 한국인 안에 잠들어 있는 홍익정신을 실천으로 깨워내다.

발표--------- 팀버드송[전 한양대 교수], 통역(한유경)

 4발표자 - 홍익인간과 다다살리()민주주의

발표-------- 이찬구박사[겨레얼운동가, 철학박사]

5발표자 - 과학적 관점에서 본 홍익 민주주의

발표-------- 연주헌교수[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융합생명과학과교수]

 

[2] 질의응답 사회 ------------- 우대한 박사[국학운동시민연합]

 

 

 

 

 

 

 

< 발표문 >

제 1 주제   
촛불 다음날 ;
홍익정신과 선비정신을 기초로 한 혁신의 전망
                 발표자 - 이만열(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하바드대박사, 현 경희대교수, 아시아인스티튜트 소장]

 

“촛불 다음날: 홍익인간 과 선비정신을  기초로 한 혁신의 전망”

심각 한 경제, 정치 문제는 돈으로 해결 할수 없어요. 한 명 구세자 같은 정치인의 노력으로 해결 할 수도 없고 좋은 기술이나 좋은 자원으로 해결 할 수도 없어요. 심각 한 도전을 직면 하고 있는 한국은 이번에는 원래 정신 뿌리 “홍익인간” 및 “선비정신”을 회복해야 자신있게 혁신이 가능하며 이번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겁니다.


홍익인간과 한국의 기업 문화 혁신

 

국제사회에서 삼성, 현대, LG와 같은 한국의 대기업들은 세계적으로 대단한 힘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 독일 회사들과 더불어 세계적인 제조업 시장을 형성하면서 오히려 세계에서 가장 앞서가고 있는 분야도 있다. 하지만 현재 한국 기업의 국제사회에서의 평판이 반드시 좋다고만 할 수는 없다. 한국 기업들은 단기적인 수익에 너무 많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환경 문제, 인권 문제에 대해 한국 기업들의 의식이 높지 않고 기업들 자체도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상식이다.
수익만을 핵심 가치로 여기는 기업들은 그 기업을 구성하는 직원에 대해서도 인간으로서의 가치는 존중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자본주의 성격이 초기와는 달리 상당한 수준으로 수정되는 추세를 보여 왔다. 그러나 욱일승천하는 기세로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확장하는 한국 기업에서는 유럽의 초기 자본주의에서 나타났던 회의감이 재연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세계화 시대에 세계적인 자원을 통합적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그리고 냉전과 탈냉전을 겪으며 힘겹게 시행착오를 겪어온 자본주의 진영, 그리고 이제는 전 세계 대부분 지역 지식인들의 소망이다. 이런 상황은 자본주의의 권력자인 자본가나 기업인에게도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가난한 나라, 힘없는 나라의 국민들이 교육을 더 많이 받고 경제적 위상을 향상시킨다면 지구촌 전체의 구매 능력과 소비 총량을 확대시키는 결과가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세계 자원을 통합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은 각국 정부나 국제 기구가 아닌 세계적 기업들이다. 세계를 변화시키는 세계 정부 창설을 상상할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정부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게 때문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세계적인 기업들이 좀 더 인간답게 세계에 공헌하는 모습으로 바뀌는 것이 현재로서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세계 정부는 없고 이것은 실제로도 어렵다는 점에서 기업이 스스로 바뀌는 것은 유일한 방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핵심은 기업의 DNA를 바꾸는 것이다. 기존의 이름은 그대로 둔다고 해도 본질과 성격 자체를 바꾸는 혁신이 필요하다. 세상은 지금 새로운 기업 정신과 문화를 가진 회사를 갈망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과업을 한국의 기업들이 선도적으로 수행하면 어떨까? 물론 한국 기업들은 전 세계 어느 나라 기업보다도 수익 중심의 기업 문화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에는 인간다운 기업 문화를 창출해낼 수 있는 전통 사상이 존재하고 있다. 바로 홍익인간 정신이다.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인류의 행복과 인간 사랑을 일찍이 표방하는 한국의 건국이념인 홍익정신은 모든 인류와 사상을 포용하는 정신이다. 물론 홍익정신은 의심할 바 없이 모든 한국인이 자랑스러워하는 한국인의 문화다. 그러므로 한국의 기업들은 다른 어느 나라 기업들보다 홍익정신을 손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홍익정신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 중심의 문화를 기업 문화 중심으로 위치시키면 기업 혁신의 새로운 모델이 생겨날 수 있다. 그런데 홍익정신은 인종이나 민족, 종족을 차별하지 않는 보편적인 성격의 개념이라는 점에서 다른 나라로 확장시킬 수도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 독일 등 다른 나라 기업도 홍익정신을 중심으로 하는 혁신적인 기업 문화를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특별히 거부할 필요가 없다.
이러한 변화는 궁극적으로 기업들 스스로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가까운 장래에 모두가 보게 되는 변화가 될 것이다. 전 세계가 단일 시장권으로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 기업의 목적을 수익 하나만으로 규정하는 것은 기업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수익과 더불어 직원에 대한 분배, 지역 사회와 지구촌에 대한 공헌이 기업의 목적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실적 평가도 수익과 분배, 공헌 모두를 따지는 것으로 변경돼야 한다. 특히 큰 회사는 세계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 캠페인에서 상당한 역할을 수행하는 쪽으로 기업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환경문제를 해결하고 인간의 가치를 존중하는 것, 여러 가지 사회의 갈등과 세계 평화를 목표로 해야 하고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홍익인간 정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면 그 어느 사상이나 철학도 더 나은 논리를 제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이 일류국가라는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홍익정신을 기반으로 한 혁신에 나섬으로써 수익성만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인류에 공헌하는 노력에 대해서도 평가를 받는 문화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런 기업 문화가 한국에서 시작된다면 외국의 다른 기업도 이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한국 기업은 현재 수익을 중시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의 기업은 이제 세계의 흐름에 따라가는 존재가 아니라 세상의 흐름을 주도하는 진영에 속해 있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삼성과 현대, LG 등 한국에는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기업 조직이 많다. 세계적인 한국 기업들이 인간의 가치를 존중하고 서로 협력하는 새로운 기업 시스템을 만든다면 한국은 국가적으로도 대단한 영향력을 갖게 될 것이다.
한국 기업들은 이제 미국의 기업들 못지않게 한 발 앞서 새로운 기업 문화 혁신을 해낼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고, 한국에는 다른 어느 나라에도 없는 보편적인 인류 공동체 중심의 철학인 홍익정신이 존재한다. 그리고 세상은 새로운 기업문화를 요구한다. 새로운 기업문화를 만들어내지 못하거나 따라가지 못한다면 앞으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업은 없다. 그렇다면 한국 기업들이 홍익정신 중심의 기업 문화 혁신을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한국 교육, ‘홍익인간’으로 돌아가라

한국의 교육은 좋은 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 교사의 능력이 우수하고 교과서와 참고서 수준이 뛰어나다. 무엇보다 한국인의 교육에 대한 열정이 뜨겁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교육은 상당한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교육 제도가 경쟁 위주라는 점은 문제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학생들은 서로 협력, 교류를 할 수 없고 항상 1등만을 요구받는다. 사람의 가치와 수준, 이해 방식을 항상 숫자로 평가받아야 한다. 이 복잡한 세상을 이차원적인 방식으로 보는 훈련을 받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상대평가제도에서도 나타난다. 한국 사회는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인간의 생활 수준을 연봉이나 경제성장과 같은 숫자로 판단하게 됐고 이것이 교육에 영향을 미쳐 학생의 성적을 다른 학생과 비교해 상대적 위치로 평가하는 제도가 도입된 것이다. 이처럼 숫자로 평가되는 교육은 오늘날 한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그렇지만 명백하게 인간에 대한 이해, 깨달음은 숫자로 표현할 수 없다. 교재의 양이 너무 많은 것도 진실을 파악할 수 없는 접근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한국만의 독특한 문제이고 문화이므로 해외에서 해결책을 찾기란 쉽지 않다.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오히려 한국의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방법이 된다. 한국의 전통을 재평가하고 과거의 좋은 점을 가지고 다시 현재로 돌아와 그것을 현대적으로 적용시키고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이다. 이것이 외국에 없는 한국만의 새로운 방법을 찾는 편리한 길이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의 홍익인간 정신을 여기서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홍익인간 정신은 널리 모두를 이롭게 한다는 한민족의 건국이념이다. 홍익정신의 핵심은 모든 사람이 스스로의 가치를 깨닫는 것이고 그 깨달은 가치를 나를 넘어서 다른 사람, 사회, 국가 그리고 이 지구를 위해 쓰는 것이다. 한국의 교육 이념에도 이미 홍익정신이 담겨 있다. 한국의 교육기본법 제2조(교육이념)에는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라고 공식화되어 있다.
잠자고 있던 한국의 건국이념인 홍익정신의 전통을 되살리는 것은 없던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한국인의 얼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정신을 다시 되살리는 것이기 때문에 현재 한국의 교육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방법으로 적합하다.
홍익정신은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모범사례가 될 수 있고 새로운 교육법으로 제시할 수도 있다. 물질만능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 물질이 아닌 인간의 가치를 중시하고 모두를 위한 정신을 중시하는 홍익정신이야말로 현 시대의 한계를 극복할 대안으로 주목받을 수 있는 잠재력이 풍부한 개념이다.
홍익정신을 담은 교육은 유치원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유치원부터 아이들에게 자기 뿐 아니라 주변사람, 사회, 국가, 전 세계의 환경, 평화 등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생각하도록 해야 한다. 홍익정신이 한국 교육의 기반으로 자리를 잡게 되면 현재 한국 교육이 가진 장점, 즉 좋은 교과서와 높은 수준의 선생님 그리고 높은 교육열이 긍정적인 의미로 합쳐져 세계에서 선례를 찾기 어려운 좋은 교육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한국의 교육 문제는 두 가지 착각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경쟁을 해야만 선진국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이 생각하는 그런 선진국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도 선진국이다. 무리하게 선진국을 따라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역효과와 부작용을 만날 수 있다. 그런 경쟁은 오히려 아이들을 해치고 장기적인 비전을 망칠 수 있다. 두 번째는 내부경쟁이 있어야 기업이나 정부,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것도 잘못된 생각이다. 물론 부분적으로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고 아이들에게 경쟁이란 어느 정도 필요하고 무조건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학생들 서로 협력하고 함께 했을 때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고 경쟁보다 결과적인 효율도 더 높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바로 이것을 가르쳐야 한다.
유치원부터 토론하는 문화를 가져 보는 건 어떨까? 팀을 만들어 토론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고 사회에 제안하는 방식이 좋을 것이다. 물론 외국에도 협력 교육 사례가 있지만 그것보다 한국의 홍익인간 전통은 훨씬 더 깊고 유익한 개념이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도 자신이 사는 지역 또는 사회에 자신의 생각을 제안할 수 있고 이것은 중년층이나 노년층보다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
유치원부터 나의 가치를 깨닫고 모두를 위해 나의 가치를 사용할 수 있는 홍익정신을 가르치고 시스템을 도입한다면 학생들도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하게 되고 성적만을 위한 교육이 아닌 새로운 교육문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날로 심각해지는 왕따 문제도 생각해보자. 왕따 현상은 소비문화와 가정 붕괴의 결과물 이다. 소비만 하는 사회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 연결이 별로 없다. 경제적인 이익이 없으면 교류도 하지 않는다는 사고방식이 대두된 것이다. 사회에 공동체 개념이 없다면 옆집에 사는 사람에 관심이 없고, 당연하게 학교에서 학생 사이 공동체 의식도 약화된다고 볼 수 있다. 학생 사이의 공동체 개념을 재구성하려 한다면 홍익인간 정신은 든든한 사상적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교육은 이제 경쟁 중심의 제도에서 공동체 중심의 제도로 이동할 수 있고 이동해야 하는 시기에 들어섰다. 공동체 중심의 교육 제도는 이미 한국의 전통에 존재하고 있다. 홍익인간 정신을 되찾고 홍익정신으로 돌아가면 되는 것이다.

3.  선비(Seonbi) 시대를 생각하자

국제사회에서 삼성이나 LG와 같은 주요 브랜드는 잘 알려져 있고 특히 우수한 품질로 정평이 나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에게 한국이라는 나라는 여전히 잘 모르는 나라에 불과하다. 미국 사람들은 현대 자동차를 몰고 삼성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그들이 한국과 관련해 신문에서 보는 것은 서울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혹시 한국에 대한 보도를 접한다면 그것은 서울이 아니라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나 북핵 문제 정도다.
과거 한국이 가난했던 시절에는 이런 상황에 대해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됐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은 시나브로 다른 선진국 기업들과 경쟁하는 상황이 됐고 한국이라는 나라의 정체성과 특성이 제품의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단계에 들어섰다. 그러므로 현재 한국에게 절박하게 요구되는 것은 한국의 정체성, 특히 정체성 가운데 긍정적인 요소를 국제사회에 알리는 작업이다. 그런 작업에서 핵심적으로 필요한 것은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정신 (개념 대신)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 개념은 한국이라는 나라를 이루고 있는 다양한 요소와 소재, 주제들을 하나로 묶어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외국인들이 이해가 가능한 문화적 존재로서, 그리고 지식 사회로서의 한국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일본의 예를 들어보자. 일본말 ‘사무라이’는 아프리카 사람이든 남미 사람이든 누구라도 상관없이 보편적인 의미를 떠올릴 수 있다. 사무라이 경영학, 사무라이 도덕률, 사무라이 전법 등 사무라이 개념에서 파생된 갖가지 책들이 출판돼 왔다. 사무라이 영화는 수백 개가 넘고 전 세계 어린이들은 사무라이 게임을 하면서 논다. 명령과 지시를 충실하게 따르고 엄격한 행동 규범을 유지하는 충성스런 전사들은 이제 일본만의 개념이 아니라 범 세계적인 문화의 일부가 됐다.
비슷하게 일본 용어인 ‘닌자’ 역시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문화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의 어린 아이들도 다른 아이들과 함께 놀 때 닌자처럼 담벼락을 오르거나 다른 사람을 감시하거나 공격하면서 닌자 흉내를 낸다. 닌자는 이제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관념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닌자 개념의 보편화로 생겨난 각종 혜택을 누리는 것은 종주국 일본이다.
물론 일본 사람 전체가 사무라이로 알려져야 한다고 보는 것은 과도한 것이다. 사실 일본에서 사무라이 출신 가문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일본 사람 대부분은 상인 가문이거나 농부 가문 출신이다. 그렇지만 일본은 ‘사무라이’ 용어를 국제사회에 일본을 소개하기 위한 개념으로 발전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이 결정은 전략적이었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일본 문화에 대해 명확한 이해를 하는데 도움을 줬다.
오늘날 한국에 관해 말하자면 한국에는 그런 개념이 없다. 외국 사람들은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알기가 어렵다. 그들이 한국을 좀 안다고 해도 그것은 한국의 대중가수나 패션에 대해 조금 아는 정도다. 그들의 지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매력적인 한국의 전통은 아직은 존재감이 없다. 한국 문화가 영향을 미치는 범위는 음악이나 영화, 그리고 일부 대중문화에 국한된다.
한국이 만일 한국의 정체성을 소개하는 개념으로 ‘선비정신(Seonbi Spirit)’을 채택하는 것은 어떨까? 이 개념은 그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선비정신은 한국 사회와 역사에 깊이 뿌리 박혀 있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학문적 성취나 도덕적 삶에 대한 의지와 행동으로 나타난다. 사회적 차원에서는 한국인 공동체 내부적으로는 고도의 집단주의적 성향, 그러면서도 이질적인 존재에 대해서도 존중하는 태도, 홍익인간으로 대표되는 민본주의 사상, 자연을 극복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는 특성이 두드러진다. 그리고 국가적 차원에서는 외세 개입에 대한 강력한 저항과 동시에 평화적 국제질서에 대한 적극적 지지 등으로 나타난다. 선비정신에 포함돼 있는 핵심적 요소와 특징은 한국인만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하고 있고 지지할 수 있는 보편적인 내용들로 이뤄져 있다.
고려나 조선 시대 중심적인 인물들을 회고해 보면 선비 전통은 현대 국제사회에 딱 들어맞는 모범적인 인물상을 제공할 수 있고 개인적 또는 국가적 차원에서 적절한 도덕적 행동에 대한 모델을 제공할 수 있다. 지식인들이 소소한 개별 영역에서 조용한 전문가로 살아가는 그리고 사회 전체에 대한 책임감을 잃고 살아가는 시대에서 선비정신은 절박하게 필요하다. 교육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는 별도로 존재하는 수단이 돼 버린 세상에서 선비정신은 한국의 교육을 재발견할 수 있는 개념이기도 하고 외국으로 수출할 수 있는 상품도 될 수가 있다. 예를 들어 선비정신의 특성 가운데 하나인 지행합일 정신은 한국의 교육 특징을 재발견할 수 있고 교육 체계를 재구성하는 것도 가능하게 해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일본의 구몬 학습법이라고 하는 것과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선비정신이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의 요구에 맞게 수정될 수 있다면 예전에 사무라이 같은 방식으로 국제사회로 확산될 수도 있고 단지 소비품을 생산하는 차원을 넘어서 한국은 사람들이 사는 방식 자체에 영향을 미치면서 한국이 진정으로 중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세상 사람을 포용하는 역할도 가능하다. 지금의 세상은 무절제한 소비가 지배하는 시대다. 선비는 사회책임을 갖고 겸손 하게 사는 지식인 의 전통에서 태어난 보편적인 모델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선비의 특성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강하게 인정하고 있다는 점은 다른 나라 엘리트들이 공유를 한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보편적인 특성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한국의 선비들이 최고 지식인이 되기 위해 부단하게 노력한다는 점도 시간과 공간을 떠나 모든 사람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보편적 속성에 해당한다. 또한 선비는 문화와 예술에 대한 이해와 참여도 적극적으로 행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 이런 특성을 지닌 엘리트를 원하는 나라가 지구상에는 엄청나게 많다. 사회에 대한 책임감이 빈약해서 권력을 쥔 엘리트가 태연하게 부정부패를 자행하는 것은 후진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지식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고 수준 높은 교육 여건을 마련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지배자도 존재한다. 이들은 오히려 국민을 교육시키는 것이 반정부 활동가를 확산시키는 가능성을 높일 뿐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문화와 예술을 이해하지 못해 사람을 도구로만 여기고 결국 불필요한 국민의 저항을 만들어내는 한심한 권력자도 적지 않다. 그리고 지식 (학문)이 반드시 책임감 혹은 실천과 평행 해야된다는 정신이 핵심 이다. 이런 나라에서 선비정신이 도입되고 선비정신의 특징이 알려진다면 엘리트의 결심과 일반 국민들의 지지를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지도자가 바로 전 세계 수십억 명의 민초들이 갈망하는 지도자상이 아닌가?
선비 전통을 되살리는 작업에서 또 하나의 흥미로운 함의는 중국으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선비는 당연하게도 중국의 유교 전통과도 가까운데 특기할 점은 중국에 원래부터 존재했던 전통과 더욱 가깝다는 것이다. 원나라 이후 중국의 유교 사상은 왜곡되는 과정을 거쳤다. 중앙 정부나 황제권 수호를 위한 권위주의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 그렇지만 송나라 시절까지는 그렇지 않았다. 만약 중국에서 강력한 한류 움직임의 일부로 선비 사상을 알게 된다면 그들은 아마도 그들이 갖고 있는 본래의 유교 전통을 재발견하려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중국은 물론 동북아시아의 문화 지도를 변화시키고 궁극적으로 주도권을 잡으려 할 것이다.

4. 한국 역사의 재발견: 한국 역사가 50년이라고?

한국은 스스로의 문화의 힘을 통해 한국인이 스스로를 인식하는 방식이나 국제사회가 한국을 인식하는 방식을 변경시킬 수 있다. 나아가 중국이나 일본, 미국 그리고 다른 나라 사람들이 각각 스스로를 인식하는 방식도 변경시킬 수 있다. 한국 전통의 잠재력은 어마어마하다. 그러나 한국의 역사를 지난 50년으로 국한시키고 한국인만을 상대로 사고한다면 한국의 문화는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현재 한국에게 있어서 과거 전통의 재발견이라는 과제는 흥미로운 차원에서 판단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의 추가적인 발전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사활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한 한국은 이제 선진국가의 일원으로서 국제사회를 선도하는 보편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동시에 개발도상국은 물론 다른 선진국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모범국가가 돼야 하는 독특한 사명도 지니고 있다. 저개발국가에서 선진국이 됐다고 하는 특이한 국가 발전 경험은 수많은 개발도상국에게 희망과 영감을 불어넣어주는 근거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요구들에 부응하지 않을 경우 한국 내부적으로는 물론 선진 국가들로부터 비아냥거림을 피할 수 없고 개발도상국 국가들로부터는 실망과 성토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이 과거 전통의 재발견을 통해 국제사회에 정체성을 널리 알리는 것은 반드시 해야만 하는 과정이 된다.
한국이 엄청난 장점과 자산을 활용하는 데 느린 이유로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그것은 두 개의 단절 현상이다. 하나의 단절은 잠정적이고 다른 하나의 단절은 물리적이다. 잠정적 단절은 과거의 한국과 현재의 한국에서 발생한다. 한국에서는 역사적 연속성이 깨진 것처럼 보인다. 두 개의 한국 사이에 심각한 훼손이 있어서 다시는 서로 연결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인은 근대화된 사회를 강조하고 전통적인 사회는 퇴행적이라며 싫어한다. 다른 나라와의 비교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아니면 독일 어쩌면 미국이나 일본 지식인의 경우를 들어볼 수 있다. 프랑스의 지식인에게 몽테스키외의 저작에 대해 질문하거나 독일 사람에게 칸트의 철학에 관해 질문한다면 대부분의 경우에서 프랑스 사람이나 독일 사람은 교육 배경이 그다지 높은 수준이 아니라고 해도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과거에 그들이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 등에 대해 합리적 수준의 지식을 갖고 있다. 유럽의 정부나 기업체에서 일하는 사람 중에 자국 역사에 대해 고도의 지식을 갖고 있거나 이웃 나라의 역사에 대해서까지도 지식을 갖추고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에는 문화 연속성이 아주 크게 부족하다. 극히 일부의 한국인은 위대한 한국의 전통을 긍정적으로 보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과거 시기인 조선시대와 훨씬 현대화된 노력을 보여주는 한국 사이에는 근본적인 단절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극단적인 사례를 보면 몇몇 한국인은 한국 음식은 맛이 있고 한국의 온돌과 같은 시스템이 편리하다고 생각하지만 30년 또는 40년 전까지는 한국에서 진정으로 의미 있고 중요한 것이 없었다고 본다. 평범한 한국 지식인에게 프랑스나 독일 지식인에게 했던 질문을 던지면 그 사람은 18세기 주요 한국 작가의 작품에 대해 잘 모른다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과거와 현재 사이에 연결이 불가능한 간극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고 그 간극은 한국의 목표와 문화적 중요성, 그리고 결국 자신감마저 훼손한다.


결론
우리는 전통문화 안에 대단한 힘을 발견할 수 있어요. 내년에 올 경제적 위기, 탄핵 같은 정치위기를 극복 하려면 그 대답은 우리 문화 속에 있어요. 재발견 할 때가 왔어요.

 

 

 

 

 

 

 

제 2 주제   
홍익정신이 대한민국의 중심가치가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대한국민이 세워야 할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발표자 - 김창환 [국학원 사무총장]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대한국민이 세워야 할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 대한민국의 총체적 위기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실의에 빠져 있습니다.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외치며 거리로 나왔고 언론을 통하여 매일매일 새로운 권력형 부정부패 사건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대선 후보 등 정치인들은 이러한 혼란한 시국을 최대한 활용하여 국민들로부터 인기를 얻고 새로운 권력을 창출하기 위해 책임감 있는 행동보다 선동적이고 인기 영합적인 말만 쏟아내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국정농단의 진실을 밝히고 관련자들을 엄벌하는 것도 당연히 중요한 일이지만, 이런 참담한 사건이 일어난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이며, 앞으로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야 하는가에 대한 대 국민적 논의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이번 국정농단 사건은 대통령과 소수의 측근들이 국민으로부터 받은 권력을 국민을 위하여 사용하지 않고 대통령이라는 최고의 권력을 이용하여 그들의 욕심을 채우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고 천인공노할 일입니다.
그러나,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역대 권력을 살펴보면, 진정 국민들을 위한 지도자가 있었는지, 그리고 부정부패와 연루되지 않은 정권이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임진왜란 당시에도 선조는 백성들을 버리고 피난을 가버렸고 전국 방방곡곡의 의병장들이 일어나 나라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일제가 조선을 강탈할 때도 위정자들은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나라를 팔아먹었고, 뜻있는 백성들이 중국 땅에서 독립 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해방 이후에도 권력자들은 민족이 화합된 통일 조국을 건설하지 못하고 외국에서 무분별하게 들어온 “사상”이라는 이념에 빠져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죄 없는 백성들을 고통의 도가니에 몰아넣었습니다.
6. 25. 전쟁 이후에도 대한민국은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루어 냈지만, 역대 대통령들은 권력형 비리를 저질러 대통령 본인이 또는 측근들이 줄줄이 감옥에 가거나 부하로부터 암살을 당하거나 스스로 자살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국론은 보수와 진보로 완전히 분열되었고, 권력에 기생한 무리들이 대한민국의 상층부를 형성하여 나라의 재물과 권력을 독식하고 있으며, 국민들은 심각한 양극화 속에 희망을 잃고 있습니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은 “경쟁과 성공”이라는 잘못된 가치 속에서 입시지옥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꿈을 잃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 총체적 위기의 근본원인은 무엇인가

“이러한 총체적 위기의 근본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특정한 정치인들의 개인 비리의 문제가 아니라 총체적인 국난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지도자가 나와야 하는지 정확한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지금 정치지도자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들이 삶의 지표로 삼을 만한 철학이 있는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이 무엇인가?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등 민족의 위기 마다 백성들이 일어나 나라를 구하였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스스로 목숨을 바친 의병장, 독립군의 정신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이러한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해야 합니다.
고려는 불교를 나라의 근본가치로 삼았고, 조선은 성리학을 나라의 근본가치로 삼았습니다.
조선의 성리학적 가치 질서가 무너져 갈 때 우리 민족은 스스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고 일제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고, 해방 이후에도 일제가 심어 놓은 식민사관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채 서구의 자유민주주의 사상을 헌법의 근본정신으로 명시하였으나, 위정자들은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국민들에게 알리고 실천하기보다는 권력을 유지하고 국민들을 억압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였습니다. 서구에서 들어온 자유민주주의 사상은 국민들이 선거를 통하여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훌륭한 정치철학입니다. 또한 자유민주주의 사상과 함께 들어온 자본주의 시장경제질서는 모든 국민이 자신들의 능력에 따라 경제주체로 참여함으로써 “시장”을 통하여 만인에게 최고의 행복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경제철학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서구의 사상은 대한민국 현실에서 심각한 경제 불평등, 양극화를 가져왔고, 정치권력은 자신들의 권력을 재생산하고 유지하기 위해 심각하게 부패하였으며, 국민들은 “경쟁과 성공”이라는 사회 시스템 속에서 진정한 삶의 가치와 행복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새로운 가치를 세울 때입니다. 모든 국민들이 진정한 삶의 가치를 찾을 수 있고, 정의롭고 평화로운 국가를 만들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세워야 합니다.
이러한 근본가치의 부재가 대한민국의 총체적 위기를 가져온 것입니다.


■ “홍익정신” 으로 중심가치를 바로 세워야 한다.

우리 한민족에게는 단군왕검께서 고조선을 건국할 때부터 위대한 철학이 있었습니다.
“홍익인간 이화세계”라는 위대한 철학이 단군조선의 통치이념이자 교육철학이었으며, 삶의 중심철학이었습니다.
우리의 역사 속에 도도하게 흐르는 이러한 홍익철학이 바탕이 되어 우리 백성들은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등 국란의 시기마다 의병정신, 독립정신으로 일어나 나라를 구하였습니다.
이러한 위대한 철학이 일제 강점기에 철저한 역사왜곡과 민족정신말살정책을 통하여 단군조선의 역사와 함께 왜곡되고 살아졌습니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은 일제가 심어 놓은 이러한 식민사관을 철저히 극복하고 우리의 정신을 바로 세워야 했으나, 우리의 힘으로 해방을 이루지 못한 결과 식민사관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고 우리의 정신도 바로 세우지 못한 채 민족상잔의 전쟁을 겪어야 했고 그 이후 심각한 분열로 오늘의 상황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 국민들은 일제가 심어 놓은 식민사관을 극복하고 우리의 정신인 홍익정신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홍익정신은 한민족이 우수하다는 국수적의적인 사상이 절대 아닙니다.
홍익정신에 담겨 있는 “천지인사상”, “경천애인사상”에는 인간에 대한 존경을 넘어 하늘과 땅 즉 우주와 인간이 하나라고 하는 위대한 철학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홍익정신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철학이 아니라 실생활 속에서 자신의 자아를 찾을 수 있고, 자연과 하나가 될 수 있는 수행문화를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홍익정신이 담긴 문화가 바로 우리의 선도문화입니다.
이제는 우리국민들이 홍익의 가치를 제대로 알고 홍익정신을 삶의 중심 가치로 삼아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현재 경쟁과 성공의 잘못된 가치 속에서 형성된 욕망 중심 문화를 자연과 함께 자연 속에서 자연의 일부로서 생활하는 선도문화로 바꾸어야 합니다.
이것이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심각한 환경오염과 양극화로 위기에 몰린 인류의 문명을 구하는 유리한 길입니다.


■ 홍익지도자의 기준
  
대한민국의 정신을 바로 세우고 새로운 정신문화국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지도자를 제대로 선출해야 합니다.
최순실 국정농단사건의 원인도 국민들이 정확한 기준을 가지고 대통령을 뽑지 못하여 발생한 일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 국민들은 지금까지의 실수를 절대 반복하여서는 아니 됩니다.
내년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부터 정확한 지도자의 기준을 정하고 그 기준에 맞는 대통령을 뽑아야 합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을 이끌 지도자는 무엇보다도 도덕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도덕성은 정직, 성실, 책임감을 기반으로 합니다. 정직, 성실, 책임감이 뒷받침 되지 않은 지도자는 결국 자신뿐만 아니라 나라까지도 망치고 만다는 것을 우리의 역사가 증명하였습니다.
정직, 성실, 책임감이 뒷받침되어야 비로소 公心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정치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私心보다는 公心을 삶의 기준으로 삼는 사람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왕은 도망갔으나 목숨을 걸고 외적을 무찌른 의병장들의 마음, 홑옷을 입고 북풍한설이 몰아치는 만주벌판을 누비던 독립운동가들의 마음이 곧 공심입니다.
 
둘째 대한민국의 정치지도자는 민족정체성을 회복하고 시대를 읽는 역사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지도자의 역사의식은 민족사와 세계사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시대의 과제가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입니다.
특히 대한민국은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 등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나라입니다. 이러한 강대국들의 틈바구니 속에 대한민국이 새롭게 탄생하기 위해서는 정치지도자가 민족의 정체성을 바로 알고 역사의 흐름을 읽는 안목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국민의 힘과 긍지는 이러한 역사의식에서 나옵니다. 대한민국의 지도자는 주체적 역사의식으로 국민들에게 민족적 자긍심과 비젼을 심어주어여 합니다.
대한민국의 지도자는 우리민족의 뿌리인 단군조선과 홍익철학에 대하여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지도자가 우리 민족의 뿌리와 정체성에 대하여 정확히 모른다면 이는 대한민국의 지도자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셋째, 대한민국의 지도자는 민족화해와 세계평화에 이바지할 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철학이 없는 사람이 대한민국의 지도자가 된다면 대한민국은 과거의 고통스러운 역사를 반복할 것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지도자는 외국에서 들어온 서양철학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에서 나온 한민족의 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현재 유일한 분단국입니다. 이러한 분단상황을 극복하고 민족의 화해를 이룰 철학과 실질적인 정책이 있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민족화해는 바로 세계평화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지도자는 대한민국을 장ㅇ,;서도 힘 있는 나라로 만들어 민족통일과 세계평화에 기여해야 할 것입니다.

넷째, 대한민국의 지도자는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비젼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지도자 특히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스스로 “내가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수백 번 물어보아야 합니다. 대통령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되었을 때 어떻게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느냐가 중요합니다.
과거에 우리는 잘 살아보자는 비젼으로 전쟁의 폐허에서 경제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이제 21세기에 어울리는 새로운 비젼이 필요합니다. 민족의 미래에 대한 비젼도 없고 민족적 과제에 대한 절절한 고민도 없이 권력을 잡으려는 것은 범죄나 다름없는 행위입니다. 

다섯째, 대한민국을 이끌 지도자는 겨레를 하나로 묶고 민족의 비젼을 실현할 통일론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유일한 분단국인 대한민국의 지도자는 민족의 공생과 평화를 가져 올 통일철학을 국민들에게 제시하여야 합니다.
한반도의 통일은 남북한의 합의와 주변강대국들의 지지에 의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지도자는 이러한 통일철학을 정확히 세우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여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 
    -  인간성이 회복된 진정한 복지국가의 실현

1. 대한민국은 일제가 심어 놓은 식민사관을 하루 빨리 극복하고,  민족의 위기 때마다 구심이 된 단군조선과 국조 단군의 건국이념인 “홍익철학”을 국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야 하며, 대한민국의  중심가치로 삼아야 합니다.

2. 대한민국 국민은 한반도가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임을 뼈저리게 통탄하고, 홍익철학을 바탕으로 민족통일을 이루는 것을 민족적 사명으로 삼아야 합니다.


3. 대한민국은 교육기본법 제2조 명시되어 있는 바와 같이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 아래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人類共榮)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는 것”을 교육의 유일한 목적으로 삼아 하루 빨리 경쟁과 성공 중심의 교육을 철폐해야 합니다.

4. 대한민국은 홍익철학으로 한반도를 통일하고, 세계평화를 실천할 수 있는 강하고 힘 있는 정의로운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5. 대한민국은 전 국민의 양심과 자존감이 회복된 복지국가로 나아가야 합니다. ‘가진 자가 없는 자를 돕는 서구식 복지국가’가 아니라 모든 국민들이 자신의 가치를 깨닫고 인성이 회복된 복지국가로 가야 합니다. 이러한 복지국가는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홍익철학에 기초한 것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복지국가가 실현될 때 만인의 행복과 인류의 평화가 올 것이고, 대한민국은 21세기 정신문명을 주도하는 정신문화대국이 될 것입니다. 

 

 

 

 

 

 

 

 

제 3 주제   
한국인 안에 잠들어 있는 홍익정신을 실천으로 깨워내다.
  발표자 - 팀 버드송 [전 한양대 교수]

 

 

 

 


홍익은 Action이다!!!

 

 

 

 

 

 

 

제 4 주제
홍익인간과 ‘다다살리’ 단(檀)민주주의

                        발표자 - 이찬구[겨레얼운동가, 철학박사]

 

 
  <목차>

  1. 문제제기
  2. 단군과 단군민족주의
  3. 홍익인간과 단민주주의의 실천론
  4. 결론
 

 

1. 문제제기
 
  우리는 최근 몇 달 동안 전혀 다른 체험을 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의 시위문화는 으레 폭력 내지는 폭력성을 수반하는 것으로 인식해왔으나, 그러한 것은 사라지고 평화집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필자는 대통령 탄핵을 주제로 한 일련의 촛불집회를 ‘광화문의 평화’라고 규정짓고 싶다. 이것은 광화문과 평화라는 두 개념의 절묘한 조합을 의미한다.
  경복궁의 광화문은 1395년(태조 4년) 9월에 창건된 궁궐의 정문이다. 처음에 정도전(鄭道傳)에 의해 사정문(四正門)으로 명명되었고 오문(午門)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1425년(세종 7년) 집현전 학사들이 광화문(光化門)이라고 바꾸었다. 광화문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270여년 간 중건되지 못하다가 1864년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재건으로 다시 옛 모습을 되찾았다. 1968년 중앙청의 정문으로 일부 복원되었다가 최근 2006년 12월부터 광화문 복원 및 이전 공사가 시작되어 전통적인 옛 모습을 찾기 시작했으며 2010년 8월에 완공되어 경복궁의 정문으로 완전히 복원되었다. 완공 당시에 한글현판으로 할 것이냐, 한자현판으로 할 것이냐로 논란도 있었으나 현재의 한자현판으로 결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광화문 앞의 광장 명칭도 2009년에 ‘광화문광장’이란 이름으로 조성되었다. 광화문이라는 이름은 『서경』에 나오는 光被四表 化及萬方(광피사표 화급만방; 빛이 사방을 덮고, 교화가 만방에 미친다)에서 따온 말이다. 이는 임금의 통치를 중심으로 한 말이지만, 오늘날은 그 임금이 빛을 잃자 국민이 일어나 새로운 빛이 되고 있다. 그 빛이 평화의 빛이 되어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고, 한국 민주주의 역사를 다시 쓰게 하고 있다.
  우리 민족에게 깃든 평화의 빛은 오랜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 다른 민족의 개국신화가 전쟁으로 얼룩져 있다면, 우리의 개천신화는 비폭력적 평화의 정신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를 우리는 홍익인간이라는 개천이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화려한 이념에도 불구하고 우리민족은 현재 남북 분단이라는 비홍익적(非弘益的)이고 비평화적 체제에 살고 있다. 오늘의 남북 분단체제는 세계체제의 하위구조처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지금 세계는 미국과 중국이 강대강(强對强)구조를 이루고 있고, 남과 북도 강대강(强對强)으로 적색경보가 켜져 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과 북한, 중국과 한국도 강대강(强對强)의 구조로 극한 대결을 보이고 있다. 필자는 미국, 중국, 한국, 북한을  동북아평화의 4대 주춧돌[四基礎]이라고 평하고, 이들 4기초의 강온(强穩)의 역학관계에 의해 동북아의 평화가 결정된다고 본다.
  그런데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세계 열강에 둘러싸여 있던 조선에 특이한 현상이 일어났다. 바로 민족적 고유종교(이하 ‘민족종교’로 통칭함)의 등장이었다. 동학과 대종교라는 민족종교는 민족의 암울기에 혜성처럼 나타나 민족해방의 등대가 되었고, 민족운동의 선구가 되었다. 동학운동과 단군운동은 다 같이 민족의 고유성에 바탕을 두고 이를 지키기 위해 민족적 투쟁에 적극적이었다. 그 고유성의 바탕은 홍익인간 정신의 근대적 부활이었다.
  그러면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홍익인간의 정신은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가? 특히 안으로는 국가적 위기에 처해있고, 밖으로는 북핵과 사드(THAAD)배치라는 최악의 시대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민족 노선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그에 대한 해답을 필자는 홍익인간과 근대민족운동에서 찾고자한다. 이런 의미에서 홍익인간에 대한 재해석은 절실하다. 단순히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라는 기존의 해석에 얽매여서는 새로운 지혜를 모을 수 없다고 본다. 홍익인간에 대한 원초적인 해석과 수미균평위(首尾均平位) 사상을 찾아 이를 독립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접목시켜야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필자는 ‘다다살리 단(檀)민주주의’라는 새 개념을 제시하고자 한다. 

 

2. 단군과 단군민족주의

 1) 20세기 단군운동과 항일무장투쟁

  홍암 나철은 1863년 12월 2일 전라남도 낙안군 남산면 금곡리(현 전남 보성군 벌교읍 칠동리 금곡부락)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자는 문경(文卿)이고, 호는 경전(耕田또는 經田)이다. 어린 시절에는 이름을 두영(斗永)이라 하였으나 과거와 벼슬길에 오르면서 인영(寅永)이란 이름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나인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1909년 대종교를 창시하면서 이름을 외자인 철(喆)로 바꾸고, 호(號)또 홍암이라 하였다.
  1908년 11월에 일본으로 건너가 외교적 방법으로 구국운동을 하였으나, 별 소득을 얻지 못하였다. 이때 그는 일본에서 두일백(杜一白)이라는 한 노인을 만났다. 1908년 12월5일, 동경 청광관(淸光館)여관에서 만난 그 노인이 이르기를, “나의 성명은 두일백이오, 호는 미도이며, 나이는 69세인데, 백전 도사 등 32인과 함께 백봉신사에게 사사하고, 갑진(1904년) 10월 초3일에 백두산에서 회합하여 一心戒를 같이 받고, 이 포명서를 발행한 것이니 귀공의 금반 사명은 이 포명서에 대한 일이오”하였다. 이어 12월 9일 다시 나타나 나철과 동석하였던 정훈모에게 영계(靈戒)를 받게 하고, 간곡히 말하기를, “국운은 이미 다하였는데, 어찌 이 바쁜시기에 쓸데없는 일로 다니시오. 곧 귀국하여 단군대황조의 교화를 펴시오. 이 한 마디 부탁뿐이오니 빨리 떠나시오”하며. 「단군교포명서(檀君敎佈明書)」한 권과 「고본.신가집(神歌集)」 및 「입교절차」등의 책을 주었다. 이를 받고 귀국하였다. 그는 다음 해인 1909년 1월 15일 자시, 서울 재동 취운정 아래 육칸 초옥에서 ‘단군대황조신위’(檀君大皇祖神位)를 모시고 제천의식을 거행한뒤 ‘단군교포명서’를 공포함으로써 단군교를 중광하였다. 이 자리에는 나철, 오기호, 강우, 유근, 정훈모, 이기, 김윤식 등 수 십인이 참례하였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이 단군교를 빙자하여 친일행위를 하므로 홍암은 1910년 7월 30일 교명을 ‘대종교’(大倧敎)로 개칭하였다. 교명을 바꾼 직후 나라가 일제에 의해 강점되자 그는 활동지역을 만주로 넓히고 1914년 5월 13일에는 총본사를 만주 화룡현 청파호로 이전하였다. 아울러 서울에 남도본사, 청파호에 동도본사를 설치하는 한편, 백두산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4도 교구와 외도교구를 선정함으로써 교구제도를 확대·개편하였다.
  대종교는 종교활동과 교육을 모두 항일운동에 초점을 맞추었다. 1918년 서일, 김동삼, 김좌진, 유동열 등 대종교인 39명이 임오독립 선언서를 발표하였다. 그리고 서일이 조직한 중광단, 윤세복이 조직한 흥업단 등이 무장반일투쟁에 앞장섰다. 1920년 서일은 북로군정서의 총재가 되어 김좌진, 이범석등을 이끌고, 만주의 청산리에서 일본군을 크게 섬멸하는 전과를 거두었다. 이 전투는 독립군 1천8백 명으로 일본군 3개 여단과 맞서 일본군 사상자가 3천3백인데 비해 독립군은 60명이 희생되었을 뿐이다. 당시의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대종교가 국조단군을 숭배하고 일제와의 무력투쟁을 전개하였다고 하여, 본래 국수적, 배타적이었다고 보는 것은 옳지 않다. 대종교의 삼일철학은 민족적 주체성과 세계적 보편성을 균형있게 추구하였으며, 다만 침략자인 일제에 대한 무력투쟁은 민족의 생존권 확보를 위한 불가피한 투쟁이었다.
  일찍부터 만주로 망명온 민족지도자들은 일제의 통치력이 미치지 못하는 만주 땅에서 활발히 독립운동을 준비하였다. 자금을 모아 토지를 매입하고 이주민을 받아들여 한민촌을 건설하여 경제적 자립을 도모하였다. 이어 각지의 청년들을 모아 민족교육과 군사훈련을 실시하였다. 
  3.1운동은 만주의 독립운동가들을 크게 고무시켰다. 독립전쟁의 때가 다가왔다고 판단하고, 무장투쟁을 본격적으로 준비해갔다. 특히 대종교는 만주로 총본사를 옮기고, 1910년 10월 간도 삼도구에 지사를 설치하였다. 이것은 간도지방을 중심으로 무장투쟁을 전개할 목적이었다. 우선 동창학교, 명동학교 등을 설치하여 민족교육을 실시하고 군사교육을 병행하는 한편으로 국내에서 만주로 들어온 의병들을 규합하여 중광단(重光團)을 결성하였다. 중광단은 1911년 서일을 중심으로 한 대종교인들과 의병들이 규합한 청년조직이다.
  1918년 중광단을 중심으로 한 무오독립선언, 이듬해 3.1운동의 영향으로 활기를 띈 중광단은 대종교에서 범종교적인 단체로 승화하여 새로운 대한정의단을 결성하였다. 기독교를 제외한 유림들이 참여하였고, 일제에 혈전을 주장하였다. 대한정의단은 이어 김좌진, 이범석 등이 가담하고, 무기를 구입하여 군정부(軍政府)의 기능을 수행하였고, 임정의 명령으로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라 개칭함으로써 이름 그대로 정부의 공인 군사기관이 되었다.
  총재 서일, 총사령관 김좌진, 그밖에 김규식, 이범석 등이 초대 임원을 맡았다. 조직을 갖춘 대한군정서는 주민들에게 징병제를 실시하여 청장년을 소집하였고, 군자금을 조달하여 체코제, 러시아제 무기를 구입하였다. 대한군정서는 양봉산에 병영(兵營)을 건설하고 연병장을 만들어 본부로 삼았다. 김좌진 등은 서간도의 신흥무관학교에 도음을 요청하여 교관 이범석과 졸업생 박녕희, 백종렬, 강화린, 오상세, 최해, 이운강, 김훈 등을 비롯한 다수의 훈련장교들과 각종 교재를 공급받고, 모집한 장정 중에서 18세이상 30세 이하의 초중 등 교육을 받은 신체 건강하고 애국심이 강한 우수 청년 300여명을 선발하여 속성 사관교육을 하여 일당백의 최정예부대를 만들었다. 소총은 물론이고 기관총과 박격포까지 갖춰 중무장을 하였다.
  일제의 한국강점 이후 국내에서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독립운동을 위하여 북간도로 이주하였고 가난한 농민들도 살 길을 찾아 북간도로 몰려들었다. 그리하여 북간도지역의 한인이주민수는 급속히 증가, 1912년에는 16만 3천명, 1919년에는 27만 9천여 명, 1925년에는 34만 6천여 명, 1931년에는 39만5천여 명에 달했다. 결과 1910년대에 이르러서는 북간도지역의 한인 집거구를 중심으로 한인사회가 형성되기에 이르렀으며, 이는 한국의 민족종교가 국외로 전파되어 상생할 수 있는 지리적, 사회적 조건을 마련해 주었던 것이다.
 
2) 한말 단군민족주의로서의 단군운동

  한말 민족운동은 크게 동학운동과 단군운동으로 대별된다. 신용하는 이 중에 단군운동에 주목하여, 한말 애국계몽운동기의 하나의 큰 사상흐름으로서 ‘단군민족주의’(檀君民族主義) 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우리가 여기서 말할 수 있는 것은 韓末(한말) 애국계몽운동기의 하나의 思想으로서 「檀君民族主義」 「檀君내셔널리즘」이라고 부를 수 있는 思潮가 사상계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전개되다가 그 한 흐름은 歷史로 흘러들어가 申采浩(신채호) 등의 「古代史」의 설명에 投射(투사)되고, 다른 한 흐름은 宗敎로 흘러들어가서 羅寅永(나인영) 등의 「大倧敎(대종교)」의 창건으로 投射되었다고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단군민족주의는 두 가지 흐름으로 나타났는데, 그 중의 하나가 역사로 흘러들어가 신채호 등의 고대사 연구에 투사되고, 다른 한 흐름은 종교로 흘러들어가 나인영(나철) 등의 대종교 창건으로 투사되었다고 보았다.
  그 후 단군민족주의를 본격적으로 연구한 이는 정영훈이다. 그는 단군민족주의란 “단군을 민족사의 출발점으로 상정하고 ‘단군의 자손’으로의 단일민족의식을 기본으로 하여 민족정체성을 구성하며, 그 같은 인식 밑에 민족적 통합과 발전을 도모하던 일련의 의식-사상 또는 문화적-정치적 운동을 가리킨다”고 규정하였다. 이어 임형진은 6·15 선언 이후 남북 모두에게 단군민족주의는 서로를 위한 최선의 정치사상임을 자각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보았다.

  한편 근대적 민족주의 사학(民族史學) 운동가로 박은식, 장지연, 신채호를 들수 있다. 신채호는 같은 민족주의 사가(史家)라 하더라도 독특한 위치에 있다. 이를 두고 유교적 사학과는 다른 단재사학(丹齋史學)이라고 명명하기도 한다. 신채호는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신(神)이나 혼(魂) 또는 얼 대신에 구체적인 고유한 사상체계를 중요시하였다. 즉 그는 화랑도의 사상을 한국의고유한 것으로 보고, 이 낭가(郎家)사상의 성쇠가 곧 민족사의 성쇠를 좌우한다고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 의하면 한국사는 고유사상이 외래사상과 투쟁하는 역사로 파악하였다.

역사란 무엇이뇨? 인류사회의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 시간부터발전하며 공간부터 확대하는 심적(心的) 활동의 상태의 기록이니, 세계사(世界史)라 하면 세계 인류의 그리되어 온 상태의 기록이며, 조선사(朝鮮史)라면 조선민족의 그리 되어 온 상태의 기록이니라.

  신채호는 당시의 세계정세를 제국주의 시대로 보고 있다. 그는 서구열강이 추구하고 있는 제국주의 본질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저 열강이 문명은 날로 번창하고 인구는 날로 늘어 자기나라의 토지만으로 그 생활을 하기가 어려우며, 자기 나라의 생산물만으로 그 발전을 꾀하기 어려우니, 이에 나라 밖으로 영토를 확대하고 이익을 얻으려고 미발달지역을 개척하여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 하니, 자기보다 열등한 나라는 물론 동등한 힘을 가진 나라에 대해서도 경제싸움을 걸어 승부를 겨루는 것이다.


  당시 제국주의가 자본주의 발달과정에 따라 겪게 되는 약육강식의 경제전쟁은 필연적이었다. 이 필연적 제국주의 경제전쟁을 목도한 신채호는 역사를 나와 나 아닌,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으로 보았던 것이다. 신채호의민족주의는 바로 이 제국주의의 침략에 대응하기 위한 유일한 투쟁노선이다. 이 투쟁에서 일본도 예외는 아니었다. 을사늑약 이후 국권을 상실한 우리 대한을 표현하기를, “삼림(森林)이 유(有)하건마는 아(我)의 유(有)가 아니며, 광산이 유하건마는 아의 유가 아니며, 철도가 유하건마는 아의 유가 아니다”라고 통탄하면서 국가는 있으나 국권이 없는 나라를 시급히 바로잡기 위해서는 부국강병을 통한 독립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의 부국강병론은 서구문물의 모방에는 비판적이다. 그는 서양의 경제, 법률, 상업 및 부국도 결국 그들의 애국심과 국사에 대한 사상에 기초한 것으로 보고, 우리도 민족주체성과 정신적 대아(大我)를 바탕으로 애국심을 고취하고 산업과 교육을 육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그 중에 신채호는“역사가 없으면 국민의 애국심이 어디서 나오겠느냐”면서 민족사의 서술 작업을 통해 애국심을 고취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존 역사서술이 사대주의에 빠져 있다고 비판하고, 역사중심의 민족주의 사관정립에 몰두한다. 그는 우리 민족사의 사통(史統)을 세움에 있어, 아래와 같이 단군을 시조로 분명히 하고 2천만 민족은 그의 자손이라 하였다.

始祖檀君(단군)이 太白山에 下하사, 此國을 開創하고 後世子孫에 貽(이)하시니, 三千里疆土(강토)는 其産業也며, 四千載歷史는 그 譜牒(보첩)也며, 歷代帝王은 其宗統(종통)也며,

  이어 신채호는 단군을 고구려 왕조의 직접 조상이라는 관점에서 ‘단군 →부여·고구려로 양분 → 부여 멸망, 고구려 재통합’으로 보았으며, 특히 묘청을 진압한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지을 때에 우리의 옛 사서를 없앤 후에, 조선의 강토를 줄이고, 조선의 문화를 유교화 하며, 외국에 구걸이나 하는 외교가 전부인 양하여 철저히 사대주의로 꾸며놓았다고 지적하였다. 신채호는 우리 역사에서 김부식에 의해 자주적인 국풍파(國風派)가 패하고, 사대주의가 승리한 것을‘1천년 이래 제1대사건’이라고 비탄해 하였다. 신채호는 초기에는 국민을 계몽의 대상으로 파악했으나, 3·1운동 이후 민중의 위대한 힘을 발견하였다. 여기서 신채호 사상은 ‘신국민설(新國民說)’과 뒤에 나오는‘민중혁명론’으로 구체화된다.
  먼저 신국민설은 말 그대로 한 나라의 국가경쟁의 원동력은 한두 사람의 영웅에 의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국민 전체에 있다는 주장이다. 이 신국민설은 결국 부국강병의 근대적 국민국가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근대적 국민인 신국민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며, 그들이 역사의 주체라는 것이다. 그런데 신채호는 근대국민국가의 수립을 보지 못하고 망국(亡國)을 당하자 국민이라는 말 대신에‘민중’이라는 말을 사용하게 된다. 바로 조선혁명선언(1923년 작)은 민중을 혁명의 대본영으로 삼은, 민중에 의한 무력혁명론이며, 민중에 의한 무장독립전쟁론이다. 그렇지만 그는 무력주의를 절대적이 아닌 제한적인 의미에서 정당한 것으로 생각하였으며, 결국에는 민족주의와 인류공영을 양립시키고자 하였다.

3) 대종교의 단군민족주의

  김동환은 대종교와 단군민족주의에 대해 ‘대종교의 성립과 단군민족주의’와 ‘대종교의 독립운동과 단군민족주의’라는 두 측면에서 대종교의 단군민족주의를 거론하고 있다. 특히 대종교의 성립에  있어서 「단군교포명서」가 지니는 의의를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첫째, 대표적인 민족종교이자 한말, 일제기에 전개된 단군민족주의 운동의 주역의 하나였던 대종교의 중광을 견인한 공헌이다.
둘째, 후대에 와서 민족상징들로 정립된 관점들이 많이 나타나는 점이다. 즉 단군 건국에서 비롯된 단기연호라든가, 10월 3일 개천절이 이 포명서에 제시되어 있다.

  홍암 나철은 서기 1908년 말에 일본으로부터 귀국하여 한배검께 보국안민(輔國安民)·제인구세(濟人救世)의 대원(大願)을 기원하고, 나아가 신교(神敎)의 중광과 종도(倧道)의 재천(再闡)으로 민족의 운명과 동양평화를 증진시키려는 뜻에서 1909년 1월 15일에 나 철·오기호(吳基鎬)·이 기(李沂) 등 수십명이 모여 서울 재동(齋洞) 취운정(翠雲亭)아래 6간(間) 초옥(草屋) 북벽(北壁)에 '단군대황조신위(檀君大皇祖神位)'를 모시고 「단군교포명서」를 공포하여 단군교를 한국의 종교로서 '중광(重光)'하였다.
  이 「단군교포명서」에는 종교적 단군민족주의의 토대가 되는 종교적 체제, 즉 교조관, 교리관, 교사관 등을 엿볼 수 있는데, 교사관적 측면에서  「단군교포명서」에는 단군신앙의 흐름이 단군시대로부터 부여와 고구려, 발해와 고려를 거쳐 조선의 이태조에게 까지 금척을 내린 주체가 단군임을 연결시킴으로써 조선조 까지 연면히 지속되고 있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는 면에서 값진 의의를 갖는다.
  또한 10월 3일을 단군개극입도지경절(檀君開極立道之慶節)이라 한데서 개천절이 부활하는 계기가 된다. 개천절은 종교적 기념일을 넘어 범민족적 기념일로 승화되어 독립정신을 일깨웠다. 다음은 「단군교포명서」의 처음과 마지막 단락이다.

오늘은 오직 우리 대황조 단군성신께서 나라를 여시고 한얼이치의 그 진수를 펼치시어 깨우침의 참다운 도리를 세우신 지 4237년이 되는 경절(慶節)이라, 우형(愚兄) 등 13인이 태백산 대숭전(大崇殿)에서 본교 대종사 백봉신형(白峯神兄)을 찾아가 절하여 뵙고(중략) 오호라! 물을 마시면서 그 원천을 생각하고, 나무를 심으면서 그 뿌리를 북돋아 주어야 하나니, 이는 본교 신봉자들이 당연히 해야할 도리이며 당연히 행하여야 할 일이요, 쉽게 알게 되는 이치이며 쉽게 행할 일이라. 믿는 마음을 독실히 가지고 행하여 오직 한 정성으로 대황조님을 숭봉하소서! 4천여년 오랜 가르침의 숨겨졌던 것이 다시 돌아와 나타나는 밝음이 또한 오늘에 있을 지며 천만억 형제 자매의 화가 물러가고 복이 돌아옴이 역시 오늘에 있으니, 오호라! 모든 우리의 형제자매들이여!  단군개극입도 4237년  대한 광무 8년 갑진 10월 3일

  「단군교포명서」는 본래 1904년 음력 10월 3일 두일백 등 13인이 백두산에 있는 대숭전(大崇殿)에서 대종사(大宗師) 백봉과 함께 포명한 것이다. 그 내용은 "금일은 유아(惟我) 대황조단군성신(大皇祖檀君聖神)의 4237회 개극입도지경절야(開極立道之慶節也)라…"라는 글로 시작하여 그 끝도 단군개극입도 4237년으로 마친다. 이처럼 단군 탄강의 역사, 단군교의 신앙유습, 단군교를 신봉하여야 할 이유 등을 설명하고, 우리 민족은 같은 민족으로서 같은 운명을 지니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우리 겨레가 하늘의 자손임을 강조하고, 단군교를 오로지 정성으로 믿고 받들어서 구교의 중광은 물론, 천만 형제자매가 복록을 누리게 되기를 호소하고 있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서기 1904년을 단기 4237년이라고 분명히 밝힌 점이다. 이는 『동국통감』에서 말한 단군의 무진년 건국에 따른 것이다.
  그 다음은 대종교의 무장독립운동에서 단군민족주의를 발견할 수 있다. 양대 독립기구인 북로군정서와 서로군정서에 참여한 독립군들이 모두 단군성조를 받들고 단군민족주의로 철저히 무장하여 독립운동을 주도하였다는 점은 앞에서 열거한 중광단 등의 활약에서 본 바와 같다. 특히 단군민족주의는 문화적 투쟁의 배경으로 작용하여 혁혁한 문화민족주의 운동을 전개하였다. 주시경, 이극로, 최현배의 한글운동, 이병기의 시조운동, 김교헌의 신교사관에 의한 역사복원운동, 신채호의 낭가사상, 박은식과 정인보, 신규식의 국혼운동 등등에서 대종교인이 앞장서 펼친 것은 단군민족주의의 투영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최근 발굴 자료에 의하면, 대종교는 대사회주의적(大社會主義的) 성격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대종교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홍익인간 재세이화이다. 이는 일면 사회주의와도 유사하다. 홍익인간이 철학성을 강조한 말이라면, 사회주의는 정치성을 중시한 점이 차이가 난다. 예컨대, 신채호, 신백우, 조소앙, 안재홍 등의 사상적 배경에는 이런 대종교의 이념이 정치성에서 영향을 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한영우는 김교헌의 『신단실기』를 지적하며, “대종교 신자의 입장에서 단군 또는 삼성(三聖)에 대한 깊은 종교적 신앙심을 바탕으로 하여 편찬한 것이면서도, 어디까지나 문헌적 자료에 입각하여 객관적으로 배달족의 역사를 서술하려고 노력”한 것과 “단군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무리하게 날조하지 않고, 조선 후기 실학자들이 밝혀낸 단편적인 연구 성과를 광범하게 수집 정리하고, 여기에 대종교적인 단군민족주의 세계관을 투영시켜 새로운 상고사의 체계를 수립”했다고 평가했다.   
  정민지는 권덕규의 『조선사』(초판은 1920년대 『조선유기』임)를 단군민족주의 관점에서 그의 민족주의 사관을 분석하고 있다. 권덕규의  『조선사』는 조선의 영역을 태백산(백두산)의 북쪽인 송화강을 중심으로 하여 중국 동북부 지역의 대부분과 반도 전체를 조선의 영역으로 포함시켰다. 그리고 조선의 종족은 상고시기 6대 문명을 시작한 환족(桓族)이라고 하고 이 환족을 천족(天族)이라 규정했다. 단군시대에서 환족의 범위를 숙신, 옥저, 예맥, 고죽, 한(韓)과 한족(漢族)과 섞여 살고 있는 예, 견, 방, 람 등과 청구, 주두, 도이, 래이, 우이 등 최소 14개 종족을 환족(桓族)으로 포함하여 단군의 종족으로 규정하였다. 또 권덕규는 인민이 천제(天帝;皇祖)의 후예임을 믿고 배천(拜天) 숭조(崇祖)의 신앙을 하였다고 보았다. 이처럼 조선의 종족을 환족 또는 천족이라 하고, 그 역년을 5~6천년이라 하여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하고 있다. 이는 처음으로 신시(神市)시대를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박광용은 단군시대의 민족의식을 넘어서서 일본도 우리의 역사공동체에 포괄하려는 시각을 대단군(大檀君)이라고 설정하고, 이러한 대단군주의에는 일본을 배척하는 민족주의적 대단군주의, 즉 ‘대단군 민족주의’가 있는가 하면, 일본을 수용하는 변질된 대단군주의 즉 세계주의적 또는 보편주의적 대단군주의를 경계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의하면, 권덕규는 김교헌, 신채호와 같이 대단군 민족주의의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하고 있으나, 이후에 나타나는 최남선의 「불함문화론」과 같은 보편주의적 대단군주의로 넘어가는 “민족적 대단군주의와 보편적 대단군주의의 분기점”에 서 있다고 보았다. 박광용이 최남선의 「불함문화론」을 일본에 이용당한 친일단군주의로 본 것은 이해가 되지만, 김교헌의 관점을 넘어서는 권덕규의 관점을 대종교 사관의 퇴조로 인식한 것은 문제가 있다. 권덕규는 신시(神市)시대의 설정이나 역년 5~6천년 등에서 보듯이 김교헌의 퇴조가 아니라, 이를 극복한 고대사의 영역 확대라는 측면에서 바라 볼 필요가 있다.

 

  3. 홍익인간과 단민주주의의 실천론

  1) 다다살리 단(檀)민주주의

  필자는 근대 한국민족주의 운동의 두 갈래인 동학운동과 단군운동을 따로따로 보지 말고 하나의 큰 흐름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단군민족주의’라는 말은 단군운동만을 말하고, 동학운동은 누락할 위험성이 있다. 동학운동은 제폭구민(除暴救民)과 척양척왜(斥洋斥倭)를 주장하였고, 단군운동은 외세격퇴와 민족독립을 주장하였다.
  19세기 중엽부터 한민족은 두 가지 큰 도전에 직면하였다. 하나는 외부로부터 들어온 도전으로서 선진 자본주의 열강의 침입이었다. 다른 하나는 조선왕조 내에서 새로운 질서를 요구하는 농민들을 짓밟은 봉건적 구체제의 거센 도전이었다. 이런 150년 전의 도전이 지금 멈추거나 해결된 것은 아니다. 지금 한민족은 설상가상으로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다. 분단을 고착화하여 이득을 보려는 세력과 이를 통일하여 민족적 통합을 이루려는 세력과의 충돌이라는 또 하나의 도전이 눈앞에 가로 놓여 있다. 이 모든 얽혀 있는 도전을 하나로 꿰뚫고 있는 것은 외세의존세력의 도전으로 귀결된다. 이런 사대매국의 집단에 응전하는 세력이 바로 자주독립세력이다. 이 자주독립세력은 동학운동과 단군운동으로부터 그 정신을 이어받고 있다.
  동학운동과 단군운동을 공히 사상적 토대로 삼고 있는 자주독립세력이 궁극적으로 이루려는 것은 단순한 애국계몽이 아니라, 정치적 이념의 구체적 실천이다. 여기서 필자는 자주적인 정치 이념의 표상으로 “단군민주주의”를 주창한다. 단군민주주의란 개념은 지금까지 사용해 온‘단군민족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단군민족주의는 19세기 동학혁명의 흐름의 연장선상에 있었으나 동학혁명의 이념을 수용하지 못했다. 그랬기 때문에 단군민족주의는 민족주의의 기능은 다했지만, 민주주의 기능은 수행하지 못했다. 민주주의의 진일보를 위해 단군이념에 동학의 개혁적·민주적 이념을 결합하여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따라서 ‘단군’(檀君)이란 단군민족의 순연한 자주적 평화이념의 완전한 계승성을 의미하고, ‘민주주의’(民主主義)란 동학의 만민평등과 사인여천에 입각한 제폭구민(除暴救民)으로 백성을 제일의(第一義)로 삼은 상균적 주민 자치(自治), 주민 자결(自決)의 직접정치의 계승성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국권을 지키기 위해 일어난 단군민족주의와는 달리, 단군정신을 이 땅에 구체적으로 실천하자는 단군민주주의는 단군동학주의의 다른 이름이며, 자주독립운동의 다른 이름이며, 홍익민주주의와 평화민중운동의 다른 이름이다.
  다시 말해 단민주주의의 ‘단’은 아시아 지역에서 하늘과 태양을 뜻하는 탱그리(Tangri), 텡그리(Tengri)와 우리말 대가리와 같고, 탱글탱글의 단(Tan)이며, 단군(檀君)의 단이며, 단국(檀國), 밝달 · 박달 · 배달의 단이며, 환단(桓檀)의 단이며, 하늘의 광명과 함께하는 땅의 광명인 ‘밝’으로서의 단이다. 이처럼 단민주주의의 ‘단(檀)’은 천지인이 함께하여 유기적으로 밝음의 세상을 열어가는 천도의 빛이며,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여 한 살림으로 살아가는 홍익의 주체성이며, 아울러 남북한의 역사적 동질성을 확인시켜 줄 수 있는 유일한 언어로써 분단을 극복하여 통일을 앞당기는 평화의 불씨이다. 빛으로서의 ‘단’이 천도를 실현하는 형이상학적 원리라면, 구체적인 햇빛은 세상의 평등을 실현하는 형이하학적 치화(治化)이다. 또 햇빛으로서의 ‘단’은 국민의 차가움을 녹이는 따뜻한 민주주의를 지향한다. 
  그런데 이 단민주주의의 ‘단(檀)’에는 또 다른 뜻이 들어있다.  ‘단’은 언어 발달과정에서 이미 ‘ㄷ’시대의 언어이다. 檀(단) 이후에 ㅂㆍㄺ의 ‘ㅂ’이 등장하지만, ‘단’ 그 자체는 ‘ㄷ’시대의 언어의 소산임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신라 말 檀溪(단계)는 ‘다나구루’로 소리냈다. ‘다나’는 檀(단)의 소리를 옮긴 것이고, 구루는 ‘내’의 뜻을 옮긴 것이다. ‘大(대)’보다는 ‘단’의 반음(半音)인 ‘多(다)’의 하늘에서 ‘단’이 온 것으로 보아야한다. 시기적으로 ‘다(다이)’가 ‘대’보다 먼저 쓰였다는 것을 고구려말 骨大(골대)를 ‘고다’로 읽은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일본어의 大山을 ‘다이센’이라 소리내고, 高을 ‘다까’라고 소리내는 것에서 檀(단)은 결국 많다(多), 크다(大), 높다(高)의 뜻을 지닌 말임을 알 수 있고, 이 중에 다 皆(개)를 백제에서 王(왕)이라 칭한 것에서 다(多)에 가깝다고 본다.
  그러면 君(군)은 무엇인가?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최남희는 군을 ‘그므’(今勿)로 보았다. 또 양주동은 『지봉유설』(권16)을 인용하여 ‘君(군)은 尼音今(니음금)’이라고 했다. 니음금을 줄이면 ‘님금’이 된다. 신라의 왕칭인 尼師今(니사금)도 이 ‘님’에서 나온 말이다. 님(壬)의 상고음이 ‘니엄’, 고대음이 ‘니무(nimu)’로 되고, 님검은 ‘니무가마’, ‘니무거머’로 된다. 북한의 류열은 尼師今(니사금)을 ‘니시기미, 니시거미’로 읽었다. 서정범은 님은 ‘닏>닐>닐임>니임>님’의 변화를 거쳐 왔으며, ‘닏’의 근원적 어원은 사람으로 ‘나, 너, 누’와 같은 말이라고 했다. ‘니’는 우리 말 너(汝, 爾)에 해당하나, ‘니’와 ‘나’(我)는 같은 뜻으로 사용된 예가 있다.
  그러면 두 말 중에서 어느 말이 원조일까? 상대방을 가리키는 ‘니’가 먼저일 것이다. 그 ‘니’는 어디서 왔을까? 정호완은 왕을 ‘니마>님>임’으로 보고, 니(님)의 근원을 太陽(태양), 日(일)이라고 밝힌다. 日本(일본)을 ‘니혼, 니뽄’이라고 읽는 일본어에서 ‘니’의 원형을 추적할 수 있다. 한자의 ?(닐), ?(닐) 등에 그런 흔적이 남아 있다. 닐(?)과 날(日)은 통용이 가능하다. 실제로 신라 초기에 日(일)을 泥(니)로 소리 냈다.
  이렇게 보면, 檀君(단군)은 ‘단군’이라는 소리가 생기기 이전에는 ‘다+그므’ 또는 ‘다나+그므’가 나오고, 다시 ‘다나구루’, 또는 ‘다+니시거미’, ‘다나+니시거미’ 또는 ‘다나+니무가마’이었다고 본다. 즉 多(다)는 天(천)에서 王(왕)으로 굳어지고, 나(日)와 尼(니)는 日(일)이므로 ‘다(天)+니(日)+금(今, 儉)’이 된다. 결국 檀君(단군)은 다(多, 皆)에 니(日)와 금(今, 儉))이 첨가 되면서 檀君(단군) 또는 檀君王儉(단군왕검)이 된 것이다. 오늘날로 보면 천일군(天日君) 즉 하늘의 태양 같은 임금을 뜻한다.
  실제로 삼국시기에 天干(천간)을 ‘더가나/더하나/다가나/더하나’로 읽은 근거에서 天(천)을 ‘대’이전의 ‘더’, ‘다’로 소리 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울러 ‘다’는 ‘닫>달>다>따>땅’으로 변한 것에서 땅(地)의 뜻도 가지고 있다. 이처럼 ‘다’는 하늘 땅의 모든 뜻을 다 지니고 있다. 여기서 ‘다’에는 하늘, 땅의 모든 것이라는 의미로 재해석할 수 있다. 북한의 리지린이 단(檀)은 원래 ‘다’를 한자로 음사(音寫)한 것 같다는 지적은 참고할만하다. 그런데 손성태는 멕시코 원주민(동이족의 일파인 맥이족)이 사용한 말들을 분석하여 발표한 바 있다. 다메메, 다마틴이, ‘다다살리’(tlatlazali) 등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보듯이 모두 ‘다’로 시작한다. 특히 ‘다다살리’(tlatlazali)라는 말은 그들의 고수레 풍습에서 나온 것으로 ‘모두 함께 살자’는 뜻인데, 이 말은 우리의 홍익인간과 흡사함을 느낄 수 있다. ‘다다살리’의 ‘다’를 어원상 분석하면 하늘 ‘다’, 땅 ‘다’의 뜻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천지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을 후대의 언어로 재해석한 말이 ‘弘益人間(홍익인간)’이라고 본다. 여기에서 홍익인간의 원초적 개념이 천지에 기초한 인간의 존재라는 측면에서 ‘천지인합일’사상에서 나왔다고 보는 것이 원뜻에 가깝다고 본다. 
  홍(弘)은 『강희자전』에 대야(大也)라 했고, 익(益)은 ‘더’할 익이므로 홍익은 곧 ‘대더’라고 훈독(訓讀)할 수 있다. 대(大)는 다(多)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대더’는 다시 ‘다더’가 되고, 이는 ‘다다’와 멀지 않다고 본다. 따라서 홍익의 본뜻은 천지의 뜻이며, 다다살리는 ‘천지인합일’을 뜻한다. 즉 ‘천지+인간’이 곧 ‘천지와 함께하는 인간세상’이 곧 홍익인간이다. 특히  ‘다다살리’(tlatlazali)의 ‘다다’에는 하늘의 ‘다’, 땅의 ‘다’의 뜻을 모두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어 고수레의 풍습 이전의 원초적인 공동체의식으로부터 나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는 고수레의 의식을 통해 단순히 복을 비는 차원이 아니라, 정치의 목적이 천지합일이나 천지인합일을 기원한 우주의식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이를 후대인들이 한자어로 재해석한 말이 ‘弘益人間(홍익인간)’이다. 널리 인간세상을 이롭게 하자는 사상이나 ‘모두 함께 살자’는 ‘다다살리’와 다를 바가 없다. 따라서 단군의 단(檀)이나 홍익(弘益)이 ‘다다살리’의 ‘다다’와 같다고 보는 것이다. 하늘 또는 하늘과 땅의 뜻을 모두 지닌 말로 결국 단군의 통치목적도 우주적 ‘다다살리’(모두 함께 살자=홍익인간)에 있다고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필자가 말한 단(檀)민주주의는 곧 천지와 함께하는 다다살리 공동체를 지향하는 ‘다다살리 단민주주의’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다다살리는 천지인 공동체의 이념으로 단군정치의 핵심인 홍익인간의 구현에 있다. 이는 천지(天地) 의식 또는 우주공동체의식을 반영한 말이다.
  속언에 “하늘보고 땅보고 퉤!”라는 아이들의 말속에도 하늘, 땅에 대한 무한신뢰를 함의하고 있다고 본다. 옛 사람들이 천지자연과 함께 살려는 의식의 작은 표현이 고수레였다. 또 고수레는 음식을 매개로 서로의 생명을 동일한 존재로 대한다. 그래서 사람끼리 음식을 나누는 나눔 의식을 한다. 고수레는 인간이 아닌 대상에게도 음식을 나누어주는 행위이다. 당연히 동네에서 가까운 사람이나, 찾아온 손님에게도 음식을 나누어 준다. 고수레는 욕심을 더는 덞 의식이다. 고수레는 단시간에 어디서나 누구나 간편하게 할 수 있는 신앙행위이자, 대자연을 사랑하는 열린 마음이다. 모든 것에 감사하고, 하찮은 동식물이나 무생물까지도 인격체로 대하는 생명 존중의 마음이다. 이것이 진정한 홍익인간의 모습이다.
  일찍이 안재홍은 「신민족주의」를 설명하면서 ‘다사리’ 즉 ‘다사리주의’라는 말을 사용했다. 이 말은 ‘다사리어’(모두 다 말씀하게 하여)와 ‘다살린다’(모든 사람을 다 살게 한다)의 뜻을 가진 말로 해석된다.


  2) 불평등 극복과 다다살리 민주주의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은 인권평등, 표현의 자유, 노동가치라고 본다. 이 3대 요소의 충실한 실천이 민주주의 핵심적 가치라는 것이다. 이 중에 ‘노동가치’는 생존 그 자체라는 면에서 중요하다. 즉 노동의 가치를 어떻게 인정하느냐, 어디까지 인정하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경제체제가 달라질 수 있다.
 

한국의 상위 10%의 소득집중도의 국제적 비교표
(김낙연 83쪽)


 
  최근 김낙연은 한 연구에서 우리나라 80년 동안의 소득세 자료를 분석한 바, 상위 1%의 소득집중도가 해방 전에는 높은 수준이었고, 해방 후에 급락하여 비교적 낮은 수준이었으나 1990년대 이후로 다시 급상승하여 U자형 양상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90년대 이후 소득불평등이 급속히 확대된 요인으로 ‘외환위기 이후 성과주의 보수체계가 확산’된 것과 ‘소득세 과세체계의 누진성 후퇴’를 들고 있다. 앞으로 한국경제가 저성장이 불가피한 상태에서 고령화의 급속한 진전으로 여전히 악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또 그가 제시한 상위 10%의 소득집중도의 국제적 비교표에 의하면 한국은 미국(50% 미만)보다는 낮고, 영국(40% 미만), 일본(40% 초과), 프랑스 (35% 미만) 보다는 높은 약 46%로 나타나 그 상승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2013년 국가별 행복지수의 순위를 보면 1위 호주, 2위 스웨덴, 6위 미국, 21위 일본, 27위가 한국이다.
  또한 남북한은 앞에서 말한 공동체의 유지에 필요한 공유가치를 남한 내 뿐만 아니라 남북간 동시에 확산하는 일이 당면한 과제로 되고 있다. 남한 내 자본주의 체제의 건강성을 회복하고, 체제가 다른 두 공동체간에 공유가치를 확산함으로써 사회적 불안을 해소할 수 있고, 이를 위해 상호 교류를 통한 신뢰성의 구축이 필연적이다. 남북은 실수와 실패에도 불구하고 신뢰의 역량을 지속적으로 배양해야 한다. 이것이 6·15공동선언 제4항에 있는‘민족경제의 균형적인 발전’의 토대가 될 수 있다. 그리하여 민족적 단위의 균부(均富), 균권(均權), 균지(均知)로 나아갈 수 있는 방책을 준비하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것이 바로 통일전략이다. 또 이것이 국제적으로 확대되어 국가 간 균부, 균권, 균지를 갖추면 세계평화가 조금씩 이루어질 것이다. 이를 위한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로 피케티는 ‘누진적인 글로벌 자본세’의 도입을 역설한다. 이는 유토피아적인 이상이지만, 21세기의 세계화된 세습자본주의를 통제하고, 여기에 세계화된 금융자본주의를 통제하면서 세계의 불평등을 완화시키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본 것이다.
  국내외적으로 일고 있는 상위 10%[首位]의 경제적 부의 집중 현상은 수미균평위(首尾均平位)의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머리로부터 꼬리까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고조선의 수미균평위(首尾均平位)의 상하균등 정신은 곧 동학의 상균이며, 이는 홍익인간이 추구했던 현실 개혁과 공동체 번영의 이념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홍익이 본체라면, 균평위와 상균은 그 작용이다. 이것이 다다살리 정신이다. 이 균평위(均平位)의 상균 정신은 오로지 경제적 소득만을 한정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가장 중요한 문제는 소득의 불평등을 하루빨리 개선해야한다는 점이다. 비정규직 등 고용의 불평등이 가져오는 임금의 격차가 가장 심각한 한국병이다. 그런 다음에 국민 누구나 ‘소득, 참여, 도덕’이라는 3가지 측면에서 기회가 균등하게 부여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소득 균등이 이루어졌다고 해서 참여 균등이나 도덕 균등이 무시될 수 없고, 경제적 소득 균등이나 투표와 같은 정치적 참여 균등이 이루어졌다고 해서 사회문화적 도덕 균등이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누구나 사회나 문화를 위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선(善)을 균등하게 베풀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부자나 권력자가 되어야 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부자나 권력자만이 선을 독점할 수 있다는 생각도 옳지 않다. 공공을 위해 선행을 할 수 있고, 또 공공의 선을 지킬 수 있는 공공선(公共善)이라는 도덕적 기회의 제공은 모든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열려 있어야 한다. 선행은 오히려 약자가 더 적극적이다.
  이와 같이 한쪽에 편중됨이 없이 국민 누구나 ‘소득, 참여, 도덕’이라는 3가지 측면의 기회가 천지인 삼태극처럼 유기적으로 균등하게 부여되어야 한다. 이 공공부(公共富), 공공의(公共義), 공공선(公共善)은 ‘∼와 함께(with)’에서 ‘모두와 함께’(With=All Together)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목적이 있다. 30년의 압축성장이 빚은 공동체의식의 마비로부터 깨어나 공공성을 회복하는 것은 수미균평위를 통해 이루고자 한 홍익정신의 또 다른 실천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권력이다. 보이지 않는 국가권력의 작용이다. 나쁜 권력은 나쁜 음식이 내 몸을 망치듯이 공동체를 파괴한다. 좋은 권력은 좋은 음식처럼 공동체를 살려낸다. 부(富)의 공공화, 정의(正義)의 공공화, 선(善)의 공공화는 ‘좋은 권력’에 의해 앞당겨질 수 있다.

소득 균등
경제적 균등
공공부(公共富)
부(富)의 공공화
 지(地)의 역할
참여 균등
정치적 균등
공공의(公共義)
정의(正義)의 공공화
천(天)의 역할
도덕 균등
사회문화적 균등
공공선(公共善)
선(善)의 공공화
인(人)의 역할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우리에게 현실 개혁의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는 것이다. 이런 현실개혁을 통한 혁신의 의지를 혁심(革心)이라 할 때, 혁심만이 머리와 꼬리의 상하구조를 균평위에 올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단민주주의는 피케티가 지적한 것처럼 민주주의가 자본주의에 대한 통제력을 되찾고, 공공의 이익과 사적 이익이 함께 보장받을 수 있는 한국적 대안이 될 것이다. 그리고 단민주주의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횡포를 제어하고 그 단점을 보완하여 빈부격차가 해소된 공평한 사회를 앞당겨 실현할 것이다. 그것이 한민족이 오랫동안 꿈꾸어온 천도적 의미의 홍익공동체인 다다살리 사회이며, 현대적 의미의 일류복지국가일 것이다.

 

4. 결론

  우리 세대에 부과된 가장 중요한 책무는 민족의 통일일 것이다. 우리가 분단을 극복하고 세계 속에서 당당하게 구현할 통일국가를 건설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일은 평화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광화문의 평화집회의 종착지는 평화통일이다. 촛불집회를 보면서 평화통일은 결코 불가능하지도 요원한 것도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필자는 이 글에서 평화를 지향하는 새로운 민족노선의 하나로 단(檀)민주주의를 제시하였다. 즉 단민주주의는 『신지비사』의 수미균평위와 동학의 음양상균처럼 사회적 균형과 대칭을 말해준다. 또 홍익인간의 다다살리(모두 함께 살자)는 국민의 화합과 남과 북, 북과 남을 동시에 아우르는 다다살리 공동체를 지향한다. 왜냐하면 다다살리는 이름 그대로 고수레의 전통을 간직한 천지인합일의 이념이며, 홍익인간의 공동체 정신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사회는 내적으로 많은 갈등을 겪고 있다. 다다살리를 실천하여 소득과 빈부의 격차를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균형사회를 지향해야한다. 이런 바탕에서 남과 북은 민족정기를 회복하여 ‘자주독립’의 정신에 따라 신뢰를 쌓아 상호교류를 확대하며, 이런 기초 위에서 통일을 논의하는 것이다. 여기에 민족의 동질성을 추구하는 다다살리 단민주주의 역할이 요구되며, 한국사상에서 찾아낸 통일철학의 시대적 의의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남북과 주변 열강은 북핵문제로 인하여 큰 이해관계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설상가상으로 사드배치문제로 동북아는 다시 긴장으로 빠져들고 있다. 북핵으로부터의 탈출은 대결의 극대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위험의 극소화에 있다. 위험의 최소화는 전쟁방지로부터 시작한다. 이것이 남과 북이 통일세상을 지향하는 다다살리 민주주의의 첫 출발이 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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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주제
과학적 관점에서 본 홍익 민주주의
            발표자 - 연주헌[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융합생명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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