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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3회 (사)국학원 국민강좌 "가야와 부여백제" 2017.12.26  조회: 55

 

백제의 건국 세력은 부여에서 나왔다. 삼국사기에는 백제가 고구려에서 비롯되었다.”는 설과 부여에서 비롯되었다.”는 두 가지 설이 모두 기록되어 있지만, 다른 기록과 정황를 살펴보면 백제가 부여에서 비롯되었음은 틀림없다.

 

백제의 마지막 수도가 부여이며, 공주에서 부여로 수도를 이전한 후에 나라이름을 남부여로 개칭한 것을 보아도 그들의 뿌리가 부여임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제가 고구려에서 비롯되었다고 잘못 알고 있는 국민들이 많다. 이는 온조가 추모(주몽)의 아들이며 추모의 두 번째 부인인 소서노가 백제를 건국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역사상식이다. 온조는 가공인물인 가능성이 많으며 백제의 실제 건국시조는 비류왕으로 추정된다. 비류왕은 소서노의 아들이며 소서노는 동부여 왕의 딸이다.

 

백제가 부여계통이라는 증거는 고고학적 유물로도 증명이 되고 있다. 김포 운양동 분구묘에서 출토된 관옥,유리구슬 등은 부여지역이었던 만주지역 노하심에도 발굴되었다.또한 백제의 묘제는 부여계통의 묘제이기도 한 목관 토광묘이다.

 

백제의 시조는 온조가 아니다. 2대 비류왕이 시조인 것 같다. 후대에 와서 역사왜곡이 있었던 것 같다. 고구려의 시조인 추모(주몽)와 온조를 연결시킴으로서 같은 민족으로서의 혈통임을 부각시키려고 한 것 같다.

 

가야 역시 부여족이 남하하여 세운 국가들이다. 이는 고고학적 유물로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다. 김해 대성동 고분에서 발견된 부여족 대표 지표유물인 동복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일본의 역사학자인 에가미 나미오는 일찍이 기마민족 남하설을 주장하여 큰 관심을 끌었다. 그가 언급한 기마민족은 바로 부여족을 의미한다. 에가미 나미오의 주장에 의하면 이 기마민족이 남하하여 한반도 남부를 지배하였고 다시 일보으로 건너가서 통일국가를 이루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의 주장은 고고학적 유물과 유적으로도 증명되고 있다.

 

가야의 원래 명칭은 가라(加羅)이다. 가야,구야, 가락 등의 명칭은 후대에가야르 멸망시킨 신라 사람들의 왜곡이다. 가야는 3세기 말에 북방으로부터 폭발적으로 유입된 부여족에 의해 비중국적, 북방유목문화 색채로 급격히 전화되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요서지역의 부여(서부여)가 중국에 의해 크개 패퇴되면서 왕족과 귀족을 포함한 유민이 대거 남하한 것으로 보인다.

 

가야 역사는 흉노와 부여 계통과 연결되어 있다. 이제 가야역사도 올바르게 정립될 때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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