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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은 ‘큰 그림’의 일부 2009.11.03  조회: 3882

작성자: 새벽
[시사풍향계―우실하] 동북공정은 ‘큰 그림’의 일부

최근 ‘백두산공정’에 대한 보도가 나오면서 또 다시 동북공정에 대한 비판의 열기가 높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은 동북공정을 중국의 21세기 대중화주의 전략이라는 큰 틀에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첫째,동북공정은 ‘고구려공정’이 아니다. 중국이 말하는 ‘동북’이란 동북 3성(지린성·랴오닝성·헤이룽장성)을 모두 지칭한다. 동북공정은 이 일대에서 발원한 모든 민족과 역사를 중국 민족과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이미 고구려사뿐만이 아니라 발해사와 고조선사도 모두 중국사에 편입시키고 있다.

더욱이 중국은 ‘동북’에서 발원한 모든 고대 민족들이 신화적 인물인 황제(黃帝)의 손자 고양씨(高陽氏) 전욱(?頊)과 고신씨(高辛氏) 제곡(帝?),두 씨족 부락의 후손이라고 주장한다. 고주몽의 ‘고’씨 성도 고양씨의 후예이기 때문에 붙은 것이며,따라서 당연히 중화민족의 일원이라는 것이다. 이런 논리를 바탕으로 고구려,발해는 물론 고조선의 역사와 민족까지도 중국의 역사와 중화민족에 속한다는 게 중국의 주장이다.

둘째,동북공정은 선행하는 역사 관련 공정들의 연장선상에 있다. 하상주단대공정(夏商周斷代工程)→중화문명탐원공정(中華文明探源工程)→동북공정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역사 관련 공정은,중국이 21세기 대중화주의 건설을 위해 오래 전부터 준비해온 국가적 전략이다.

9·5계획(1996∼2000년)의 일환으로 시작된 ‘하상주단대공정’에서는 대대적인 유적 발굴과 연구를 통해서 고대 왕조인 하(夏),상(商),주(周)의 존속 연대를 공식적으로 확정지었다. 하(夏)나라 존속연대(BC 2070∼BC 1600년)의 공식화는 중국의 ‘역사시대’를 무려 1229년이나 끌어 올린 것이었다. 10·5계획(2001∼2005년)의 일환으로 ‘중화문명의 근원을 탐구한다’는 ‘중화문명탐원공정’은 전설적인 ‘3황 5제’의 시대까지 중국의 ‘역사시대’에 편입하여 중국의 역사를 1만년 전으로 끌어 올리려는 것이다.

이런 역사 관련 공정들의 최종적인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랴오허(遼河) 일대를 기존의 세계 4대 문명보다 앞서는 1만년 역사의 새로운 문명권으로 부각시키려는 ‘랴오허문명론’이 그것이다. 사실 동북공정은 이러한 거대한 국가전략의 작은 일부분에 불과할 뿐이다.

셋째,한반도를 염두에 둔 다양한 작업들도 진행되었다. 먼저 1992년 한·중 수교와 동시에 ‘치우(蚩尤)’를 중화민족 3명의 조상 가운데 하나로 끌어안았다. 그것이 1992년부터 1997년까지 허베이성 탁록현(?鹿縣)에 건설한 귀근원(歸根苑)과 중화삼조당(中華三祖堂)이다. 현재 중화삼조당 안에는 5.5m 높이의 치우,황제,염제의 상이 있고,이들은 모두 중화민족의 조상으로 모셔지고 있다.

또한 단군신화의 웅녀(熊女)는 2001년 9월18일 연변 조선족자치주 왕청현 만천성국가삼림공원(滿天星國家森林公園) 안에 ‘백의신녀(白衣神女)’라는 이름으로 높이 18m,무게 520t의 거대한 모습으로 자리잡았다. 양손에 마늘과 쑥을 든 백의신녀는 ‘한민족의 시조모’가 아니라 중국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인 ‘조선족의 시조모’로 변신한 것이다.

중국이 이렇게 거대한 국가전략을 바탕으로 대한반도 전략을 실행하고 있는 마당에 새로 출범하는 동북아역사재단이 관료와 역사학자들로 구성된단다. 우리에게는 큰 틀에서 구체적인 것을 깊이있게 볼 수 있는 ‘제너럴 스페셜리스트(general specialist)’가 필요하다. 동북공정이 아직도 ‘고구려공정’쯤으로 보이는가?

우실하(한국항공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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